진먼다오(金門島)는 중국 샤먼 근처에 있는 대만 영토다. 중국과 불과 2㎞ 남짓 떨어져 있다. 이곳은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1958년 중국은 이곳을 초토화시켰다. 서울의 4분의 1 크기에 불과한 이 섬에 44일 동안 무려 47만4000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함락되지 않았다. 지하로 거미줄처럼 요새가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이곳에선 간간이 포성이 울렸다.

연초에 진먼다오를 둘러싼 소식 하나가 전 세계로 타전됐다. 대만의 집권 국민당 공식회의에서 대만군 일부를 철수하자는 건의가 나온 것이다. 이 소식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중국과 대만이 얼마나 급속도로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 개선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2008년엔 중국인의 대만 관광이 허용됐고,주말에 전세기가 뜨기 시작했다. 해운 직항과 우편 왕래도 시작됐다. 2009년엔 정기 항공노선이 열렸고 중국 자본의 대만 투자도 허용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6월 중국과 대만은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다. ECFA는 경제 · 무역 · 투자 협력을 강화하고 투자보장시스템을 확립하는 게 골자다. 작년 9월 발효됐다. 그 중 핵심인 관세 인하 등 조기수확프로그램이 지난 1월 초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중국과 대만은 말로만 협력하는 게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수출형 산업구조를 가진 대만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중국은 2009년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동안 구매사절단을 보내 무려 150억달러어치의 대만 제품을 사줬다. 작년 상반기에도 제품 구매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ECFA가 발효됐고 진먼다오 군대 철수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이 '차이완(Chiwan)'이란 한 묶음의 합성어로 불리는 것은 이런 밀월을 배경으로 하나의 경제블록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화상(華商)들과 힘을 합칠 경우 파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런 분위기를 읽고 일본은 재빠르게 대만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대만에 무관심하다. 대만의 세계 정보기술(IT)시장 점유율이 'IT강국 한국'보다 높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대만은 전 세계 노트북컴퓨터의 87%,LCD모니터의 75%를 납품한다. 대만 기업의 생산공정 관리능력은 세계 최강이다.

반면 대만의 한국에 대한 연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 깊다. 대만 주재 한 기업인은 "서울의 대만대표부에는 타이베이의 한국대표부 인원보다 몇 배 많은 사람이 근무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해 기울이는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더불어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꼽혔던 대만은 중국의 급부상과 각국의 외교관계 단절 선언 이후 고립무원의 국가가 됐다. 하지만 ECFA를 계기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날개를 단 것이다.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대만이 어떤 전략을 쓰고,중국과 일본이 대만을 놓고 어떤 정책을 구사하는지 깊이 있게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만은 중국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창이고,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교두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