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추위가 계속되어도 한낮의 집안은 따스해 좋다. 오전 중에 난방 밸브를 끄지만,밤새 덥혀진 여열에 창 안에 떨어지는 태양열이 따스함을 지켜준다. 새삼 해님이 고맙다.

과학적으로 이 태양열은 그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핵반응 덕분이다. 수소를 태워 헬륨으로 바꾸는 태양의 핵융합은 1초에 400만t의 물질을 에너지로 바꿔주고 있다고 한다. 태양의 나이는 45억년,앞으로도 그만큼의 수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태양활동은 지구를 점점 가열해 5억년 이내에 지구상의 생물은 멸종할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이런 대목을 읽다 보니 신묘년 새해에 세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재해가 걱정이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우리 축산업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세계 방방곡곡에서 물고기와 새들이 수만 마리씩 떼죽음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 중국 창춘에서는 태양이 셋으로 보이는 불길한 현상도 보였다고 신화통신이 사진을 붙여 보도했다. 이 환일(幻日)에 대해 신화통신은 그것이 미세한 얼음조각이 태양빛을 굴절 반사시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지만,옛날 같으면 세상이 멸망할 징조로 여겼던 것이란 설명을 붙였다. 우리 역사에도 해가 셋 보였다(三日竝出)는 기록은 열 번 이상 남아 있다. 그리고 조선 숙종 때 관상감의 천문학 교수인 최천벽이 1708년 쓴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에는 '해가 둘 나타나면 세상에 전쟁이 일어난다(兩日竝出 天下兵起大戰)'고 예언돼 있다.

300년 전과는 달리 해가 둘이나 셋 보인다고 놀랄 우리가 아니다. 하지만 동물의 떼죽음 같은 것은 역시 기분 나쁜 조짐이다. 옛날 같으면 지방에서 일어나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채 잊혀졌겠지만,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순식간에 전 세계에 그 소식이 퍼져 버리니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한 인터넷 사이트는 아예 전 세계 자연재해 분포도를 그려 놓아 공포감을 확산시키는 형국이기도 하다.

당연히 새해 벽두부터 온갖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2012년은 마야력(曆)에 의한 종말의 해라니….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그리고 얼마 전 이 나라를 미치게 만들었던 광우병 등은 인간이 동물을 학대해 일어나는 질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암을 비롯한 온갖 질병도 사실은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면서,그리고 온갖 화학물질이 세상을 뒤덮어 나타나는 인간에 의한 인체의 학대 때문일지 모른다.

세상의 시작은 '빅뱅(big bang · 대폭발)'부터라고 한다. 시작이 그렇다면 세상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지구에 생명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시기가 5억년 후라면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은 훨씬 짧을 것은 분명하다. 복잡한 인간은 다른 생명체보다 훨씬 먼저 사라지겠지라는 짐작도 하게 된다.

실제로 인간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는 진짜 위험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재주 바로 그것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때 지구를 호령했다던 공룡이 사라진 것은 소행성의 충돌로 화산이 대규모로 폭발해 화산재가 지구를 덮었고,그것이 햇볕을 가려 지구가 빙하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 그 밖에도 지구 자전축의 변동,태양풍,화산 대폭발,지구 온난화,핵폭발 등 온갖 위험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종말을 생각하는 것은 더 큰 병통이다. 마치 '100년 수명의 인간이 1000년 미래를 걱정하는 꼴' 아니고 무엇일까. '인무백세인(人無百歲人)이나 왕작천년계(枉作千年計)'라.《명심보감》 존심편(存心篇)에 나오는 말이다. 헛된 종말론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 모두 의연히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다.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