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잡기를 위한 전방위적인 기업조사에 들어갔다. 정유사와 액화석유가스(LPG) 업계의 불공정 거래와 제당업체의 가격담합 여부, 그리고 밀가루 커피 치즈 김치 단무지 등 94개 생필품과 서비스 가격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는 시장감시국 카르텔조사국 소비자정책국 등 공정위의 핵심부서 직원 100여명이 투입되는 등 대규모 인력이 동시다발적으로 조사에 동원됐다.

연초부터 전반적인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으면서 정부가 물가단속에 총력전을 펴치는 상황이고 보면 공정위가 경쟁당국의 행정력으로 물가를 감시하고 상승요인을 억제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 같은 시장개입은 물가상승의 책임을 기업의 불공정 행위나 담합 탓으로 돌리는 행태로 비쳐질 수밖에 없고,또 과연 기업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물가안정에 도움이 될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공정위는 과거에도 수차례 정유사나 LPG 업계의 담합조사를 하고 과징금을 물렸지만 이후 소송에서 대부분 패했다. 정유사 간 가격이 비슷한 이유가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인 만큼 담합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공정위는 2009년 추석 때도 남대문시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LPG 가격담합'을 언급하자 이내 관련 업계에 과징금을 매겼지만 해당 업체 대부분이 이에 불복,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이번에 정유사와 LPG 업계가 또 다시 공정위의 타깃이 된 것은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의 행태가 묘하다"는 최근 이 대통령의 발언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해당 업계는 가격구조가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돼 있어 폭리를 취할 여지가 별로 없는데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또 다시 기업만 속죄양으로 삼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사실 기름값을 낮추려면 세금만 50%나 붙는 상황과,국제 휘발류가와 연동된 가격결정 구조의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결국 때가 되면 한 번씩 하는 변죽 울리기식 조사로는 물가도 못잡고 기업들의 부담만 늘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무리 서민물가가 중요하다지만 경쟁촉진이 본령인 공정위가 단무지 가격까지 조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런 식의 물가잡기가 당장 효과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시장질서를 깨고 정부 정책의 신뢰성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리하게 억제된 가격은 큰 비용을 치르고 언젠가는 다시 솟아오르게 돼 있고,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당국자들은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