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된 건지…즉흥적인지… MB '한마디 정치' 허와 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한마디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대불공단 전봇대'에서 시작,최근 "기름값이 더 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관료사회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들까지 바짝 긴장하게 하는'질책성 한마디'를 멈추지 않고 있다. 관료사회의 무사안일을 깨우쳐 주는 긍정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대통령이 시장경제에까지 미시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한마디에 한바탕 소동

이 대통령의 호통성 발언으로 공직사회와 민간 기업이 발칵 뒤집힌 사례가 많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전남 대불공단 전봇대를 옮기는 것도 몇 달이 지나도록 안 됐다"고 질책하자 유관기관에선 전봇대를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 축산농가를 방문한 후 "축사를 짓는 데 비상구 표지판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소가 비상등을 보고 나가나"고 질타한 후 소방방재청은 부랴부랴 소방규제 완화에 나섰다.

"(잉여인력을) 태스크포스(TF)로 편법 관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자 각 부처는 TF팀을 대거 해체했다. "농협은 몇조원씩 벌어 사고나 치고…"라는 질책은 농협개혁을 촉발했다. "생활필수품 50개 품목의 물가를 관리하라"는 지시가 있자 과천 관가는 정확히 무슨 품목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느라 허둥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운전학원비가 비싸다는 지적을 한 지 1주일 만에 정부는 운전면허 기능시험 폐지 방안을 보고했다. 지난해 7월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쁘다"고 하면서 시장 개입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9월 이 대통령이 "비싼 배추로 만든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먹는다"고 하자 양배추가 오히려 비싸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엇갈린 평가

이 대통령의 이런 '화법'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14일 "책상머리에만 있지 말고 현장을 잘 살펴 선제적 대응을 하라고 숱하게 지시했지만 제대로 안돼 답답함을 표출하는 특유의 계산된 발언"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온갖 질책을 가해도 공직자들은 지시 사항만 챙기고 주요 정책을 강단있게 밀어붙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여전하다"며 "민생에 직결되는 분야까지 대통령이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뒷북행정'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론도 있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규제 혁파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지적하는 전봇대 발언과 같은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가격 금리 등 시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까지 관여하게 되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도 "대통령은 큰 방향을 제시해야지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미시적인 가격까지 언급하면 현장 실무자들이 시장 자율과 관치 사이에서 혼선을 겪는 등 부정적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유가 발언도 환율 변동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했어야 했다"며 "대통령이 참모들의 제대로 된 조언을 받았는지 의심스럽다. 충분한 고려 없는 발언은 권위에 훼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