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가 식품값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알제리,튀니지 등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과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인도,중국에서는 물가상승이 정치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2008년 세계를 강타했던 '식품대란'이 올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지구촌 전체에 사회불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나름대로 금리 인상에다 직접 가격통제라는 무리수까지 두는 등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폭동에 반정부 시위까지

알제리 정부는 지난 5일 주요 수출 품목인 천연가스 가격 하락으로 인해 식료품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식용유와 설탕가격이 이달 들어서만 20% 가까이 오르자 젊은 실업자들이 곧바로 폭동을 일으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인구의 75% 정도가 25세 미만의 젊은층인 알제리의 실업률은 30%에 달한다. 이 폭동으로 3명이 사망하고 약 300명의 경찰을 포함해 4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웃 나라인 튀니지에서도 높은 실업률에 인플레가 겹쳐 지난 9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14일까지 진행된 시위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총 23명이 사망했다. 튀니지 정부는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국민이 죽어가고 있다'는 노래로 구속 수감된 가수 벤 아모르를 석방하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만모한 싱 총리의 정치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 2010년 잦은 비로 주식인 카레의 주 재료인 양파 생산이 줄고 유통업자들의 사재기가 겹치면서 최근 몇 주간 양파값이 1년 전에 비해 5배 가까이 올랐다. 먹을거리 부족에 화난 국민들은 정권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인도의 일간지 이코노믹타임스는 "역대 정부가 양파가격 조절에 실패했을 경우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며 "싱 총리가 취임 이후 최대 위기에 몰렸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도 인플레가 사회불안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가통제가 심한 중국에서 물가불안은 곧 정부에 대한 불신과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구이저우성 류판수이 제2중학교(중국은 중 · 고교를 중학교로 통칭) 학생 수백명이 음식 값 급등에 항의,식당에 몰려들어 식판과 유리컵을 던지며 시위와 농성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식품가격 상승이 빈부 차에 따른 사회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분석이다.

◆계획경제 수단까지 동원하지만 역부족

인플레가 상대적으로 심한 신흥국들은 금리 인상과 같은 전통적인 물가안정책뿐 아니라 식품에 붙는 세금을 낮추고 수출입 관리를 강화하면서 직접적인 가격통제까지 나서는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 13일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생필품 수입 제한을 없애고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 관계자는 "수백만명이 수입의 50% 이상을 식품구입에 쓰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금리인상과 같은 통화정책만으로 물가를 잡는 데 한계가 있자 계획경제 시절에나 나올 법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인도는 앞서 양파 수출을 금지시킨 데 이어 양파 부족분을 외교적 앙숙인 파키스탄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지난 4개월간 두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한 중국도 이미 생필품에 대한 직접적인 가격통제 방침을 밝힌 상태다. 심지어 채소를 실은 트럭은 통행세를 면제하는 등 갖가지 방안이 시행된다. 알제리 리비아 모로코 등 아프리카 국가들도 식품에 붙는 세금을 낮추거나 가격을 규제하고 공급을 늘리는 조치에 나섰다. 알제리에서는 설탕과 식용유 수입관세,부가가치세 및 법인세를 일시적으로 면제했다. 이집트 정부도 알제리와 튀니지 같은 폭동의 위험에 직면했다고 보고 식품 보조금 지급 등 물가안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도 밀과 시멘트 수입분에 대한 관세부과 방안을 연기하기로 했다.

미국 국제식품정책연구소의 맥시모 토레오 부장은 "식품값 급등에 따른 사회소요 소식은 투기와 패닉 수준의 매입을 부추겨 식품 값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세계은행이 보고서를 통해 식품가격 급등이 빈곤국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2008년 글로벌 식량위기 때 나왔던 국제기구의 식량위기발 사회불안 경고가 잇따를 조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기 회복을 주도해온 신흥국이 인플레 덫에 빠지면서 사회불안이 가중될 경우 세계 경제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태 추이와 각국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