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니다.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다. "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결정이 내려진 14일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속도전'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많다. 기존에 1년 이상 걸리던 부실 저축은행 매각 기간을 2개월로 크게 줄인 것도 금융당국이 시장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라는 시각이다.

◆들여다볼수록 커지는 부실

삼화저축은행이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던 작년 6월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6%대였다. 겉으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금감원이 지난해 7,8월 실시한 검사에서 '믿을 수 없는 수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감독 당국의 공시 요구에 삼화저축은행은 차일피일 미뤘고 결국 과징금까지 부과받았다.

당국의 압박에 이 회사는 공시 기한인 지난해 12월2일에 가서야 BIS 비율은 -1.42%,자기자본은 -504억원이라고 공시했다.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경영개선명령 대상인 'BIS 비율 1% 미만'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당초 보고한 내용은 허위였던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새로 보고한 수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부실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검사를 실시하면 더 큰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6월 이후 삼화저축은행의 부실이 심화된 것으로 감독당국은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삼화저축은행의 재무상태는 자기자본 비율이 -10%에 육박하고 순자산 부족액은 700억원대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이 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규모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사후 정산을 조건으로 매입해준 약 2000억원을 합해 5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 줬다"

금융당국이 삼화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린 것은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줬는데도 정상화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앞으로도 부실 저축은행을 가차없이 퇴출시키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냈다고 볼 수 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앞으로도 백약이 무효한 곳은 어쩔 수 없다"며 강력한 저축은행 구조조정 의지를 밝혔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해 7,8월 검사 직후 대주주 증자를 통한 자본확충과 인수 · 합병(M&A)을 병행하도록 삼화저축은행에 요구했다. 하지만 대주주 증자와 M&A 모두 무산됐다. 여기에 캠코가 매입한 PF 부실채권을 정산하기 위해 쌓아야 하는 충당금,고위험 분야 대출 증가 등이 겹치면서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M&A에 관심을 가졌던 회사들도 대부분 실사를 해 본 뒤 (삼화저축은행) 인수를 꺼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엔 메리츠종금증권이 인수를 검토하다가 실사 과정에서 포기했다. 결국 지난 12일 금감원에서 열린 경영평가위원회는 삼화 측과 투자자들이 제시한 추가 정상화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속전속결' 처리

금융위는 향후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영업정지에서 매각까지 최대 15개월 걸리던 것을 2개월로 대폭 단축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예보가 설립하는 가교저축은행으로 부실 저축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이전한 뒤 우량자산만 남겨 매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매각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진행 과정에서 추가 부실이 발생해 예금보험기금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게 단점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인수자가 신규 저축은행을 설립해 자산과 부채를 직접 이전하는 방식을 통해 '속전속결'로 매각작업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이번에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도 예보를 통한 매각 절차가 동시에 시작된다. 2월 중순까지 최종 인수자를 선정해 발표한 뒤 영업인가 취소,신규 저축은행 인가,계약이전 명령,예보의 자금지원 등 과정을 거쳐 오는 3월 말부터는 새로운 저축은행이 영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4대 금융지주의 인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