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물가가 오른 게 정유사 탓입니까! 왜 정유사를 잡겠다는 거죠?"

14일 주요 정유사 주식담당 부서(IR팀)에는 투자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기름값이 적정한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한 불만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6개 정유 · 가스회사의 유통구조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이날 관련 종목들의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SK에너지가 3.08%(6000원) 하락하며 18만8500원까지 떨어졌고 에쓰오일도 2.99%(2800원) 하락했다. GS칼텍스를 자회사로 거느린 GS도 2.11% 동반 하락했다.

답답한 주주들은 해당 정유사에 전화를 걸어 불만을 털어놨다. A사 주식담당자는 "아침부터 주주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며 "회사 실적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투자자들이 많았는데 정부 정책이 어떻게 될지 우리도 몰라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도 "투자자들이 '만만한 게 대기업이니까 때리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며 "대통령이 시장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함부로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증권가에선 정부 압박에 따른 관련 종목의 주가조정이 일단 단기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부가 먼저 휘발유 값을 지목한 만큼 당분간 잠재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문제는 정유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왜곡된 시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통령이 국제유가와 비교해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 상승이 과도하다고 했는데 홍콩 싱가포르에서 형성되는 국제 가격에 연동되는 휘발유 가격 구조를 무시한 얘기"라며 "정부가 이런 구조를 모르지 않을 텐데 정유사를 문제삼은 것은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도 "올해는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유가도 계속 오를 전망인 만큼 휘발유값에 대한 정부 압박은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유주가 계속 정부로 인해 뭇매를 맞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