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 물가폭등과 높은 실업률로 촉발된 반(反)정부 시위로 23년 장기집권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영구 축출됐다. 임시 대통령이 취임했으나 정국은 여전히 혼란 상태다. 이번 튀니지 시위가 인근 아랍권 국가들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푸아드 메바자 국회의장이 15일 벤 알리 대통령을 대행할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며 "그러나 수도 튀니스 거리에선 방화와 약탈이 계속되는 등 나라가 혼란(chaos)에 빠져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로 축출된 아랍권 권력자

벤 알리 대통령은 지난 14일 시위가 격화되자 자신의 측근인 모하메드 간누시 총리를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뒤 가족들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사우디 왕실은 "(튀니지의 치안 안정을 위해) 벤 알리와 가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벤 알리는 과거 튀니지를 식민통치했던 프랑스로 망명하려 했으나 입국을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튀니지 헌법위원회는 15일 벤 알리 대통령의 영구 축출을 공식화하고,헌법에 따라 메바자 국회의장이 대통령 대행을 맡게 됐다고 발표했다. 아랍 세계에서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로 물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벤 알리 대통령은 1987년 무혈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23년 동안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언론과 야당을 탄압하는 독재정치를 펼치면서 부(富)와 권력을 독점해왔다. 서구 언론은 그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러더(Big Brother)'에 비유해왔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말 대학 졸업 후 일자리가 없어 노점상을 하다가 경찰에 단속된 한 청년의 자살 사건이 발단이었다. 청년의 죽음을 계기로 높은 실업률과 물가폭등에 항의하던 시위는 새해 들어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 현장에서 60여명의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졌다. 튀니지의 공식 실업률은 14%(2010년)이다. 하지만 청년층 및 지방의 실업률은 40%를 웃돈다. 공식 물가상승률은 4.5%이지만 올 들어 과일 채소 등 식품값이 폭등했다.

◆재스민 혁명,아랍세계로 불똥 튀나

대통령 직무대행이 취임했지만 혼란 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15일 수도 튀니스에서는 중앙역 청사가 불에 타고 시내 대형 할인매장과 상점이 약탈당했다. 헌법위원회는 45~60일 내에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여야 통합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간누시 총리는 15일과 16일 주요 야당인 민주진보당의 마야 즈리비 대표 등을 만나 통합정부 구성과 향후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그렇지만 이번 시위가 다른 아랍권 독재국가들의 민주화 시위를 도미노처럼 불붙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구 언론들은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른다. 재스민은 튀니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인접한 알제리와 모로코 이집트 등이 (민주화 시위가 발생할) 1순위로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알제리와 모로코에선 식품값 상승에다 높은 실업률이 맞물리면서 한 달째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운동가 수십명이 "이제 이집트인들 차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요르단의 주요 도시에서도 5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사미르 리파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튀니지에 체류 중인 국민들의 보호대책과 관련,"상황이 악화될 경우 교민 100여명을 전세기로 비상철수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 재스민혁명

파이낸셜타임스,뉴욕타임스 등 서구 언론이 이번 튀니지 시위를 표현한 명칭.튀니지에서 가장 흔한 꽃인 재스민에서 따왔다. 서구 언론은 세계 각국의 시민혁명에 지역을 상징하는 꽃이나 색깔 등을 반영해 별칭을 붙여왔다.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그루지야의 장미혁명,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