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전력대란은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석유나 가스,석탄을 때지 않고 전기로 난방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들 만큼 에너지 가격 구조가 왜곡됐기 때문이다. 전기료를 낮추는 것이 서민을 위하는 것이라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정치권과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장기간 억제했던 것이 겨울철 전력대란의 원인이다.


◆등유값 두 배 오를 때 전기료 12% 상승

정부의 가격 정책 실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는 등유와 전기요금의 가격 차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등유 가격이 98% 오르는 동안 전기요금은 12% 상승에 그쳤다.

특히 정부는 2002년과 2004년에는 전기요금을 인하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등유 가격은 국제 에너지 가격에 연동돼 오른 반면 전기요금은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필요한 인상분만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전기요금은 현재 적정 원가(생산원가+투자재원 확보에 필요한 최소 이윤)의 93.7%에 불과하다. 특히 전체 전력 사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도 원가의 96.5%에 그친다.

이는 소비 패턴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 기간 등유 소비가 67% 감소한 반면 전기 소비는 42%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내 에너지 소비에서 등유 등 석유제품의 비중이 59.9%에서 53.8%로 낮아진 데 반해 전기는 14.9%에서 18.6%로 늘었다. 난방 수요가 겨울철 전력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4년 17.8%에서 지난해 24.4%로 늘었다. 전기장판 등 가정용 난방기기 보급은 2006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등유 난방이 전기 난방으로 대체되면서 겨울철 전력난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녹색성장을 하려면 에너지 절약이 필수인데 정부가 말로는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산업계와 서민의 반발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말뿐인 실내온도 18도'

겨울철 전력대란이 우려될 때마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나선다. 16일에도 '긴급 에너지 절약 강화 지침'을 발표해 관공서 실내 온도를 18도 이하로 낮추고 전열기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1년 전에 내놓은 대책과 거의 같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이 지난 13~14일 전력 피크 시간대인 오전 11시께 정부 과천청사를 돌아본 결과 곳곳에 전열기가 눈에 띄었다. 실내 온도가 22~23도나 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실제 전력 사용량을 낮출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 청사관리소에 따르면 에너지 절약 주무 부서인 지식경제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7개 정부 부처가 모여 있는 과천 정부청사의 작년 겨울(2009년 12월~2010년 2월) 전력 사용량은 529만5044㎾h로 전년 동기(465만5227㎾h) 대비 13.7% 늘었다.

정부 내에서조차 "솔직히 실내 온도를 18도 이하로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차라리 실내 온도를 20도 이상으로 높여 근무에 열중할 수 있게 하는게 낫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수요 예측도 실패

정부는 2002년 '전력수급계획'을 발표하면서 2010년 최대 전력 수요를 6062만㎾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공급 능력을 7582만㎾ 확충하고 전력 예비율(최대 전력 수요 대비 예비전력 비율)을 25%로 맞출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요 예측은 빗나갔다. 지난해 최대 전력 사용량은 7131만㎾로 당초 정부 전망을 17.6%(1069만㎾) 초과했다. 이에 따라 전력 예비율은 6.2%에 그쳤다.

정부 전망이 빗나간 것은 전력 수요 증가를 잘못 예측했기 때문이다. 2002년 전력수급계획 수립 당시 정부는 2015년까지 전력 사용량이 연평균 3.3% 늘어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실제로는 2000년대 들어 전력 사용량이 연평균 5.7% 증가했다.

주용석/서기열/이승우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