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조심, 해외촬영에선 금주
남순이는 불안한 듯 왔다갔다 하는 다른 유기견들과 달리 이씨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냥 편안한 얼굴로 주인의 팔에 턱을 괸 채 눈 앞의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이었다. 가식이나 연출로는 만들어냈을 수 없었을,사랑과 믿음에서 우러난 장면이었다.
진정성과 노련함으로 승부하던 이경규씨(51)가 지난 연말 '2010 KBS 연예대상' 대상을 차지했다. 1981년 데뷔한 뒤 정상의 자리에 올랐었지만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중견 개그맨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무엇이 반짝스타 투성이인 연예계에서 그로 하여금 장수하고 쉰 살 넘어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게 한 것일까.
여기저기 묻고 뒤져 찾아낸 답은 간단했다. 첫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과 성실함,둘째 무섭도록 철저한 자기 관리,셋째 혁신을 위한 끊임없는 고민이었다. 성실함에 대한 찬사는 한결같다. 긴 세월 동안 녹화시간에 한번도 지각한 적 없을 만큼 약속을 잘 지키고 매체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자기 관리 부문은 한층 더 치열하다. '음주 후 운전 · 외박 · 싸움은 곧 죽음이라 생각,술은 아는 집에서만 마시고 해외 촬영 땐 아예 안 마신다'고 할 정도다. 다음 날 일에 지장을 줄까 조심스럽고,술 마시고 노는 모습을 현지 한국인들이 보면 뭐라 할지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다.
결혼식에 연예인 하객이 달랑 9명이었을 만큼 의례적인 걸 싫어한다는 그는 노후 대비와 꿈(영화)을 위해 돈을 벌고자 애쓰지만 바지 사장은 사양하고 추천은 하되 매니지먼트 사업은 안한다고 밝혔다.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면 그들을 이용해 돈 버는 사람이 되는데 그러면 대중이 보기에 불편할 것이란 얘기다.
그는 '인기란 유리창에 낀 습기 같은 것이라 해 뜨면 금세 사라지고 대중은 창 밖의 새로운 빛만 바라본다는 두려움이 지금껏 살아남게 만들었다'며 앞으로도 대중이 원하는 것을 찾아 뛰겠다고 말했다.
이경규씨는 연예인이다. 그에겐 권력도 없고 특별대우 같은 것도 없다. 누군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기긴커녕 나이 들었다고 후배들이 일어나면 부담스럽기만 한,이 땅 보통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껏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얼음 밟듯 살았다.
이경규씨뿐이랴.한국 사람 대다수가 이렇게 산다. 보통 50대 초중반,다행히 후반까지 일한다 해도 퇴직금은 몇 푼 안되고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조차 제대로 받을 길 없는 까닭이다. 재취업은 어렵고 해도 봉급은 턱없이 깎이니 어떻게든 성실과 정직으로 오래 버티려 애쓴다.
이런 국민들 앞에서 퇴임 후 몇 달 만에 몇 억원을 번 이는 관행인 만큼 억울하다고 하고,뻔히 불법인 줄 알면서 위장전입을 일삼은 이들 또한 자식을 위한 일이었다고 변명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다. "판 · 검사는 깨끗하다. 옷 벗으면 몇 년 새 평생 먹을 걸 벌 수 있는 만큼 대가를 받고 봐주는 일 같은 건 없다. "
그렇게 버는데도 전관예우 덕이 아니다,대가성이 없다,상대적으로 청렴하다는 말 모두 아무리 곱씹어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고시 출신 정치인은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다. 그들이 퇴임 후의 안락한 생활 보장을 관행이자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대가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 공정한 사회는 아득하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공을 노력의 결과로 여길 수록 뒤쳐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은 줄어든다. 성공을 미덕에 대한 포상으로 봐야 한다는 믿음은 오해다. 어느 조직이건 적합한 선이 있으며 이런 선을 무시하면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