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체에 가장 큰 적은 유가도 환율도 아닌 정전입니다. "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석유화학단지에서 정전은 사람으로 보면 혈류가 멈추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원유 정제부터 각종 화학제품 생산에 이르는 과정이 핏줄과도 같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돼 있다.

석유화학 업체들이 한순간의 정전으로 큰 피해를 입는 이유는 갑자기 가동이 중단됐을 때 파이프와 설비에 나프타 등 각종 석유화학 원료와 제품이 남아 굳기 때문이다. 기체나 액체 상태일 때는 태우면 되지만 딱딱하게 굳어 고체가 되면 이를 공기 등으로 깨 제거하는 데만 빨라도 2일,길게는 1주일씩 걸린다.

한 업체 관계자는 "품목별로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플랜트 안에 원료를 넣고 정제하다 전력이 끊겨 라인이 멈추면 정제 상태에 있는 원료는 굳어버려 다 버려야 한다"며 "재료비도 손실이지만 플랜트를 다시 청소해야 해 복구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불순물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해 남아 있을 경우 더 큰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재가동을 서두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파이프와 설비에서 빼낸 원료는 다시 투입하거나 폐기한다"며 "정전이 되는 순간 모든 공정이 멈추기 때문에 시간과 피해 규모 간 상관 관계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23분간 정전 상태가 지속돼 수초 만에 전기가 다시 들어왔던 과거에 비해 피해 규모가 더 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당장 피해가 미미한 기업들도 심장 역할을 하는 GS칼텍스를 비롯해 석유화학단지 전체에서 당분간 가동률 저하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GS칼텍스는 과거에도 정전사고가 종종 일어나 2008년 100억원을 들여 3.5㎞ 구간에 대해 송전선로를 추가로 깔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