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좌표를 알아야 이동할 수 있다
공유하는 가치 있는가
'선언적 가치'는 냉소주의 불러…'거시기' '남이가' 문화 없애야
헷갈리게 하지마라
직원들 조직문화 이해 혼란…철저한 관리 원하면 창의는 희생
최고경영자(CEO)의 취임사나 신년사 같은 것을 들여다보면 주요 추진 정책으로 대략 서너 번째 정도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조직문화다. 이런 식이다. "셋째,도전과 열정의 조직문화,성과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받는 일할 맛 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
일단 도전,열정,그리고 일하는 문화가 구현된 조직이라면 GWP(Great Work Place)라고 얘기하는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뭐라고 토 달기 어려운 이상적인 조직문화다. CEO가 도전과 열정의 일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좋지만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구현 방법이 문제다. GWP의 구현 방법을 찾으려면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조직문화 개발의 일관성 있는 접근 방향을 결정하고 다른 조직개발 기법들을 연계 활용해야 한다.
◆전사가 공유하는 핵심가치가 있는가
만약 누군가가 도전 혁신 열정 창의 몰입 자율 같은 것을 중심으로 조직문화를 얘기하고 있다면,그는 조직문화를 층위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양파에 비유하는 문화 이해의 연장이다. '문화의 양파모델'에서 보듯 이방인이 특정한 문화 집단으로 들어가면서 접하게 되는 문화의 표현 형태들은 양파처럼 층위적으로 이뤄져 있다. 양파의 겉껍질인 상징(symbols)은 이방인이 가장 먼저 목격하는 문화 형태다. 이는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말 동작 같은 것이다. 영웅(heroes)은 문화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이나 그런 행동이며,의식(rituals)은 문화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집합적 활동으로 정의된다. 이방인으로서는 일정 기간을 거치고 난 뒤에야 눈에 들어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양파의 알맹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가치와 규범(values and norms)이다.
문화와 마찬가지로,조직문화를 층위적인 방식으로 설명한 에드가 샤인(Edgar H. Schein)의 조직문화 3단계론은 '암묵적 가정' '추구하는 가치' '인위적인 요소'로 이어지는 모델이다. 조직문화의 가장 심층을 구성하는 것은 기본적 가정이다. 인간의 본성이나 현상에 대한 믿음을 반영하는,무의식적으로 당연시되는 생각들이다.
중간층에는 가치가 존재한다. 이는 공유된 원칙이나 목표 규범 기준 같은 것으로 조직 구성원이 의사결정과 행동을 하는 데 준거가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층은 인위적인 요소들로,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일체의 형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는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 샤인의 모델은 조직문화를 이해하고 조직문화 상을 정립하는 모델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국내외 유수 기업들이 핵심가치(혹은 공유가치),행동 규범,실행 행동 등을 설정해 핵심가치 경영(Values-driven Management)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중심 모델이 되는 것이다.
회사가 미션을 정하고 핵심가치를 수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 구성원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경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 기업 조직은 사실 어떤 형태의 조직보다도 중앙집권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일사불란한 실행을 매우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을 때 실제로 일사불란한 실행의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정해 놓은 핵심가치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이것이 특정 기업의 핵심가치인지,그저 한국 직장인 더 나아가 전 세계 직장인이 가져야 하는 핵심가치인지 의문이 든다.
필자는 3년여 전 한국 대기업 그룹사의 핵심가치를 비교 조사한 적이 있다. 종합해 보면 대략 개수로는 15~20개가 되지만 중복되는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실제 프로젝트 경험에서 봐도,조직 내부에서 공유된 핵심가치를 찾아내는 접근이 아니라 조직의 핵심가치로 삼아 좋을 만한 것을 정한 뒤 그것을 의식 교육 형태로 주입시켜 나가는 식으로 활용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장으로 갈수록 괴리감이 심해지고,적잖은 냉소주의를 초래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말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문화에 대한 층위적 이해가 문화의 전체적 상(像)을 그려내는 데 유용하다면,차원적 이해는 실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의미 파악에 효과적이다. 차원적 이해란 특정한 기준,즉 차원에 입각해서 문화를 비교하는 접근이다. 네덜란드의 비교문화학자인 홉스테드(G.Hofstede)는 다섯 가지의 문화 비교 차원을 제시했다. △권력거리 차원 △개인 · 집합주의 차원 △남성 · 여성성 차원 △불확실성 회피성 차원에 훗날 장기 · 단기 지향성 차원을 덧붙였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권력거리(Power Distance) 차원을 통해 보면 한국을 비롯한 유교권 국가는 권력거리가 큰 문화다. 서유럽은 대체로 권력거리가 작지만,프랑스는 예외적으로 권력거리가 크다.
권력거리가 큰 문화에서는,예컨대 교사는 지혜를 전달하는 스승이다. 스승은 그림자를 밟아서도 안 되는 존재이며,따라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론 질문하는 것도 껄끄럽다. '왜 한국 노조는 강성이고,노사문화는 대립적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권력거리가 작은 문화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상호의존적인데,이는 낮은 수준의 갈등이 상시적으로 조정되고 관리되는 관계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권력거리가 큰 문화에서는 약자가 강자에게 의존 혹은 반(反)의존의 관계를 보이게 된다. 의존할 때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어도 표출되지 않는다. 표출되지 않는다고 조정된 것은 아니며,다만 잠복해 있을 것이다. 이는 '거짓된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관계가 틀어져 반(反)의존의 관계가 되면,이때는 갈등이 조정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다.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 조직문화의 변화관리를 위해 권력거리 차원과 함께 맥락 차원을 핵심으로 보는데,이 기준에서 한국은 맥락도가 높은(high context) 문화다. 예컨대 맥락도가 높은 문화에서는 언어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거시기'라고 하면 척하고 (맥락적으로) 알아 들어야지,'거시기가 뭔데요'라고 물어보지 않는다. 고(高)맥락의 문화에서는 말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의 일부분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조직에 불만이 있는 직원이 '우리 회사는 관리자들이 다 썩었다'고 말할 때 그는 '승진 좀 시켜달라'거나 '연봉 좀 조정해 달라'는 진짜 의미를 숨기고 에둘러 불만을 말한다. 정작 승진이 돼 본인이 관리자가 되면 맥락적 상황은 바뀌고,'우리 회사의 관리자들은 훌륭한 사람들'이 된다.
한국 문화에서 소통이 어렵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 대해 '저게,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지'라며 그 이면을 자꾸 파고드는(over scanning) 경향이 강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곧이 곧대로 말하지 않으며,곧이곧대로 듣지도 않는 것이다. 다만,고맥락 문화가 반드시 소통의 어려움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는 집단에서는 오히려 소통이 원활하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가 되기도 하는 식이다.
기업 조직 속에 적용해 보면 어떤 상황에서의 맥락을 결정하는 사람(가장 힘 센 사람)이 있게 되는데,매우 중요한 발표 자료를 며칠 밤새워 준비했다고 해도 '이거 꼭 오늘 해야 하나'라는 높은 사람의 발언에 따라 사람들은 맥락을 바로 이해하고 토를 달지 않는다. 그 순간 자료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변한다. 회의 자체도 '중요한 회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 참석하기 때문에 회의가 중요해지는 것'이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직문화를 얘기하면서 왜 국가 또는 사회의 문화 차원을 장황하게 설명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한 구성원의 의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문화보다도 그가 속한 국가 사회의 문화가 훨씬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헷갈리게 하지 말라
문화를 이해하는 차원과는 별도로 특정 조직문화를 파악하는 차원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홉스테드는 문화 차원과는 달리 조직문화의 차원은 관행(practices)의 차원이라고 설명하고,'과정 혹은 결과 지향성''종업원 혹은 업무 지향성''가부장적 혹은 전문적 지향성''열린 체계 혹은 닫힌 체계 지향성''느슨한 통제 혹은 엄격한 통제 지향성' '규범 혹은 실용 지향성' 등의 여섯 가지 조직문화 차원을 제시했다.
각 차원에서 조직이 어떤 경향성을 강하게 보이느냐가 그 조직을 다른 조직과 구별 짓고 차별화시키는 문화적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조직문화가 보이는 각 차원에서의 경향성을 척도로 나타내면 조직문화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를 좌표로 표현할 수 있고,그럴 때 새로운 좌표로 이동시키는 조직문화의 변화관리가 이뤄질 수 있게 된다. 많은 한국 기업은 조직문화와 관련해 한 개 차원의 양 극단을 동시에 추구하는 식의 모순을 보이곤 한다. 어떤 조직이 종업원 중심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업무 중심적이지 않은 것이지,종업원 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업무 중심적인 조직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을 존중하는 곳이라고 크게 말하면서 실제로는 업무 중심적인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 때문에 직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조직문화를 이해하면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직원들이 창의적이면서도 여러 사안이 철저히 관리되는 조직문화는 이상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창의적으로 되려면 느슨하게 관리돼야 하는 것이고,철저한 관리의 문화를 원한다면 직원들의 창의성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