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공짜'는 없다. 돈과 자원이 한정돼 있는 까닭에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대안을 포기한 데 따르는 기회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어떤 정책목표를 정하느냐는 그래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에서 재원 조달을 도외시한 채 무상복지를 확대하자는 얘기를 경쟁적으로 꺼내는 것은 정말 걱정스럽다. 나라와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탓이다.

민주당의 경우 무상급식 · 의료 · 보육과 반값 대학 등록금 등 이른바 '복지 시리즈'를 시행하려면 스스로의 추산으로도 연간 16조4000억원이나 든다. 그런데도 정작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선 뾰족한 방안이 없다. 소득세 ·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라는 부자감세와 4대강 예산 삭감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정부기관과 학계에선 소요자금이 40조~50조원으로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보고 있으니,답답한 노릇이다.

가뜩이나 인구의 고령화와 출산장려책으로 복지지출은 가만 놔둬도 늘어나게 돼 있다. 게다가 복지대책은 일단 시행하고 나면 철회하기도 어렵다. 이런 판국에 대책없이 공짜 복지를 확대하다간 국가 재정이 나빠져 국민들이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할 것은 뻔하다.

올해 보건,복지,노동 분야의 예산은 86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28%를 차지해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 분야의 예산은 2005년부터 연평균 10% 넘게 급증하고 있어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당장은 어떻게 해서 1~2년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 부담을 늘리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시행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현재 조세와 사회보험료를 합친 국민 1인당 복지 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8.7%(2007년)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36.1%로 끌어올리려면 1인당 평균 연간 161만원을 더 내야 한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이다. 차라리 무상복지 확대가 시급하니 증세를 하자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진실된 해법이라는 얘기다. 국민의 70%를 대상으로 복지정책을 펴겠다는 한나라당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외가 아니다.

좌파든 우파든 아니면 제3의 길이든,독재정권이 아닌 한 국민들의 복지증진에 눈을 감는 정부는 없다. 그래서는 정권을 유지하지 못한다. 더 이상 복지는 특정 정파와 정당의 전유물일 수 없는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변됐던 영국병을 치유한 것은 1979년 취임했던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였지만, 20년 가까이 지나서 집권했던 라이벌정당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고용과 복지를 연계한 '생산적 복지(workfare)'정책을 시행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직접 돈을 주기보다 일자리를 주는 복지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 체득했던 까닭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GDP대비 사회복지비 지출비중이 8.9%로 OECD 평균(20.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만큼 복지지출을 계속 늘려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속도와 규모다.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가 널려 있고 사회보험이 취약한 상황에서 부유층까지 포함한 무상복지를 확대하는 건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주는 생산적 복지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한다. 당장의 달콤함을 앞세워 한 표를 유혹하는 포퓰리즘에 빠져서는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게 된다는 진실을 외면하면 안된다. 한국병이 퍼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