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제질서로 '뉴 노멀(New Normal)'에 대한 논의가 부쩍 활발해졌다. 새로운 경제질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뜻한다. 따라서 뉴 노멀은 진행형이다. 아직은 원형질에 가깝다. 그럼에도 좌파적 시각에서 '국가개입' 강화를 위한 준거 틀로 선점하려는 일단의 움직임이 보인다.

뉴 노멀은 논리적으로 그와 대비되는 '올드 노멀'을 필요로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작위적으로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시장 지상주의'로 분식(粉飾)된다. 여기에 '워싱턴 컨센서스'(미국 정부와 IMF 등이 주도하는 시장 질서)가 더해지면 강자의 탐욕 충족을 위해 빈국을 영원히 빈국으로 남게 하는 패권주의로 변모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워싱턴 컨센서스'보다는 정보통신혁명에 의해 추동됐다. 글로벌화는 국경을 넘어 지구촌을 지향하는,비유하자면 '운동장'을 넓게 쓰는 것이기 때문에 '표준'을 필요로 한다. 기업이 실제로 이익을 내고 있는지,금융회사의 부실대출 규모는 얼마인지,투자환경이 좋은지 나쁜지를 나타내는 정보가 표준화될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투명성과 설명책임성(accountability)을 제고시켰다. 시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중국 등 많은 나라가 부를 축적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여전히 작동한다.

뉴 노멀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시장실패로 규정하고 국가의 시장개입을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시장실패만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빌미를 제공한 '비이성적 과열'을 설명할 수 없다. 위기의 근저에는 '미국판 친서민 정책'의 정책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시장이 집을 소유할지 여부를 판정하게 하지 않고 정부가 판정하게 한 포퓰리즘이 문제의 연원인 것이다. 금융자원이 해당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규제한 '미국판 균형발전법'인 지역재투자법(CRA)도 정책실패가 아닐 수 없다.

금융위기로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한 주류경제학이 종언을 고했다는 주장도 설득적이질 않다. 왜 갑자기 비합리적인 행태를 보였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은 주어진 정보와 지식에 국한된 제한된 합리성을 뜻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의 실수를 동시에 저질렀다면 이는 정책실패를 반영한다. 장기간의 인위적 저금리가 그 사례다.

미국의 유력지 포린 폴리시는 '2010년 10대 빗나간 예측' 1위로 '2010년 하반기 미국 실업률 개선'을 선정했다. 빗나간 예측 1위는 '확신편향'을 의미한다. '케인스 경제학'을 신봉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실업률 감소를 철두철미 믿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유세에서 부르짖은 '변화'는 "이성을 통한,즉 정부조직을 통한 시장개입"에 다름 아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미증유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폈지만 경기부양에 실패했다. 오마바 대통령은 중간선거 패배 이후 재계와의 자리에서,미국의 성공을 이끄는 제1 엔진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인의 창의성'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뉴 노멀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시장주의'와 '국가 개입주의' 간의 치열한 패러다임 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서 "제도가 현실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제도를 선택한다"는 하이에크의 예지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경제적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가 승자가 될 것이다. 시장과 정부는 굳이 대립적이지는 않지만 정부가 시장을 압도하면 경제는 질식된다.

우리나라의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지위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위기의 물결'에 올라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뉴 노멀은 미지의 얼굴이다. 국가 개입을 정당화시키는 교두보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 '국가 개입주의'는 시장 활력을 저하시킨다. 21세기의 케인스 경제학,과신이 아닐 수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