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9일 대전에서 열 예정이던 당지도부 회의를 전격 연기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에 대한 당 내부와 당 · 청와대 간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지도부는 대전에서 충청권에 입지를 정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반대가 너무 심해 아예 회동 자체를 연기해버린 것이란 분석이다.


◆창원까지 유치전 가세

과학벨트는 충청과 호남 경기 경북 등 각 지자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3조5000억원짜리 대형 국책사업.투자비 외에 과학계와 기업들이 몰려올 경우 해당 지역은 막대한 고용효과와 수백억원의 세수증대를 기대할 수 있어 지자체 사이에선'황금알'사업으로 꼽힌다. 지자체 간 갈등은 정부와 한나라당의 입장이 불분명해지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7년간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등 첨단시설을 짓는 이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부터 갈등이 잉태됐다.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제29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된 뒤 추진 일정이 지지부진해졌고 지자체들의 유치전은 더욱 심해졌다.

충청권은 일단 기득권을 내세우고 있다. 세종시와 충남도청 신도시 등으로 이어지는 산업벨트에 과학도시 기능을 더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공약을 근거로 내세운다. 대전과 충남 · 북 3개 시 · 도는 지난 17일 염홍철 대전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이시종 충북지사 등이 포함된 100인 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500만 충청인이 행정도시인 세종시를 지켜냈듯 과학벨트도 지켜내자며 정부를 압박했다.

광주는 2008년 유치단을 구성하고 가장 먼저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곳.광주는 지난 14일 다른 지자체에 앞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직접 방문해 제안서를 제출했다. 경기도도 일부 시 · 군들이 유치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는 데다 접근성이나 연구 인프라를 감안할 때 유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반면 포항은 대통령 연고를 내세우고 있다. 이미 4000억원이 소요되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 사업을 유치했고, 과학벨트의 핵심 시설인 막스플랑크재단 한국연구소까지 들어서 있어 유치전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대구와 울산도 오는 25일 공동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정부 압박에 나설 계획이다. 경남 창원시까지 18일 유치 경쟁에 가세했다.


◆당 · 청도 의견 엇갈려

과학벨트를 두고 당 · 청 간 갈등도 심해졌다. 한나라당의 서병수 최고위원과 정두언 최고위원은 정부의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쪽이다. 서 최고위원은 지난 17일 "과학벨트를 충청권에 만드는 것은 공약이었고 공약대로 이행하겠다는 원칙만 확인하면 불필요한 오해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도 이날 "당지도부가 대전에 내려가면 정부와 협의해 충청권 안에서 과학벨트 입지를 고르기로 했다는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의견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한 핵심 관계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4월에 구성되면 입지기준을 비롯한 상세한 계획을 만들어 입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내부에선 세종시 원안이 통과된 마당에 과학벨트까지 줄 수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연구원도 유치경쟁 가열

한국뇌연구원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사업은 2020년까지 뇌관련 원천기술 개발과 연구원 건립 등에 총사업비 3786억원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다. 2007년 3월 설립추진위가 결성된 이래 2012년 1단계 시행을 앞두고 2009년 말 입지 선정 작업을 마칠 예정이었으나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사업유치를 놓고 대구 인천 대전 등 3개 지자체가 경쟁 중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뇌연구원은 어느 곳에 설립되느냐가 아니고, 하루빨리 설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구시는 이미 유치한 첨단의료복합단지와 접목한 시너지효과를 강조하고 나섰다. 인천시는 경제자유구역청과 서울대 및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와 컨소시엄을 이뤄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대전시는 한국생명과학원과 아산병원,SK연구소,KAIST를 앞세워 가장 유리한 입지조건임을 내세우고 있다.

백창현/최성국/이해성/홍영식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