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李滉 · 1501~1570)은 조선 중기 대학자다. 경북 예안 태생으로 서른세 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형조 · 병조 참의와 공조 · 예조 판서,우찬성을 지냈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됐다. 내로라 할 만한 숱한 벼슬을 지냈음에도 평생 학자의 자세를 잃지 않은 채 검소하고 반듯한 생활로 일관,중종 · 명종 · 선조 3대에 걸쳐 존중받았다.

《퇴계,인간의 도리를 말하다》는 그런 그의 언행과 삶을 담은 학봉 김성일(1538~1593)의 '퇴계어록'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이기이원론'의 바탕인 '이기(理氣)'란 무엇인가부터 마음가짐과 일상생활,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도리,꺼려야 할 것을 분별하는 자세 등 스무 가지로 정리된 내용은 삶의 좌표를 잃고 허둥대는 우리 모두에게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기(氣)는 사물을 형성하는 힘,이(理)는 기를 이끄는 원리다. 이는 도리요,기는 수단인 셈인데 수단이 도리를 이기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가 기를 거느리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생각이 하나로 모인다. 그러나 기가 이기면 마음이 마구 엉켜 끝간 데 없이 흔들리고 헛된 상상이 몰려든다. 잡생각이 없을 순 없으니 끼여들 틈을 막아야 한다. '

책에 비친 그는 부지런하고 효자였으며 형제간 우애가 깊었다. 단정하고 깔끔했으며 조용하고 공손하며 너그러웠다. 사납고 거만하게 굴거나 화났다고 거칠어지는 법이 없었다. 가장 놀라운 건 검소한 생활이다. '집이 겨우 열 칸 남짓이라 추위가 모질거나 장마 때면 견딜 수 없을 정도인데도 여유롭게 지내셨다. 영천군수 허시가 찾아뵙고 놀라서 말했다. "이처럼 누추한 곳에서 어찌 견디십니까. " "몸에 익은 지 오래라 불편한 줄 모릅니다. "'

처가에서 재산을 받았지만 손도 안 댔다는 대목도 있다. '선생의 장인인 권질 공이 집을 주려 했는데 선생은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지내지도 않았다. ' 하찮은 젊은이라도 이름을 놔두고 '너'라고 부르지 않고,부역이나 세금을 안 내기는커녕 일반 백성보다 먼저 바쳤고,의심받을 행동은 아예 안 했다는 대목도 있다.

'도산정사 아래 발담이 있었는데 관청에서 고기잡이를 금지했다. 선생은 그곳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남명 조식이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면서 "사람이 어쩌면 그리도 잔가. 하지 않으면 되지 피할 게 무언가"했지만 선생은 말씀하셨다. "남명이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겠다. "'

그는 또 고을을 다스릴 때 이름을 날리고자 수를 쓰지 않았다. 징세는 가벼웠으나 칭송에 연연,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늘리거나 줄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곁에 두고 어지러운 세상의 길잡이로 쓰고 싶거니와 툭하면 처갓집 핑계요,불법과 탈세를 일삼고 인기에 연연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요즘 관리와 정치인들도 읽었으면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