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인 기 소르망 교수(67)는 1990년대 중반부터 매년 두 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하면서 국내 정 · 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 한국의 정치 · 경제 · 문화 등에 대한 이해도 깊다. 지난 19일 서울을 방문한 소르망 교수는 20일 아산정책연구원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후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침체되는 와중에 과거와 같은 복지 혜택을 누리기는 어렵다"며 "최근 한국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무상복지 논란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르망 교수는 인터뷰 내내 한국 사회에 대해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은 '케인스주의'에서 찾아야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유럽 각국 정부는 앞다퉈 시장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시장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습니다.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돈을 풀었지만 경제는 여전히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얻은 것은 막대한 재정적자뿐입니다. 더 이상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케인스주의가 종말을 맞이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했던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 이론이 케인스주의를 대체해야만 합니다. "

[한경 인터뷰]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 교수 "시장 친화적이라고 여겼던 MB가 공무원 늘린 건 충격적"
▼한국에서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부 규모와 시장 개입 정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최근 전 세계 각국에선 공무원 수를 감축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프랑스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과 미국 모두 공무원 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정부 규모를 늘리는 것이 경제 전반에 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 친화적인 인물로 알고 있는데,한국에서 공무원 수가 늘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한국이 정부 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

▼유럽 각국에선 재정적자를 경감하기 위해 복지혜택을 줄이고 있는데요.

"물론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유럽 국가들이 누렸던 복지 혜택은 높은 경제 성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과거 유럽은 매년 평균 5%에 달하는 경제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인구도 꾸준히 증가했고요. 현재 누리고 있는 복지 혜택은 이 같은 과거의 경제성장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다릅니다. 연간 경제 성장률은 1~2%에 불과합니다. 인구 증가율도 둔화됐고요. 이젠 유럽인들도 '더 일하고 덜 받는' 문화에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

▼지난해 프랑스에선 연금개혁안을 놓고 거센 반발이 일었는데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한 연금개혁안은 바람직한 방향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복지 혜택을 줄이려면 국민을 꾸준히 설득해야 했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이 점을 강조했지만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복지 혜택 감소의 당위성에 대해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않고 밀어붙인 것이 반발을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습니다. "

▼한국에서도 무상복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저도 그 논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무상복지는 어떤 면에서 분명히 좋은 정책입니다. 많은 유럽 국가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해주겠다는 건 당연히 좋은 것이죠.다만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재정비용이 소요될 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사회 구성원 간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

▼지난해 한국 국회에서 예산안 통과를 놓고 여야 간 심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불과 50~60여년에 불과합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 문화가 제대로 정착이 돼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은 과거 오랫동안 왕권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왕이 명령하면 국민은 순종해야만 합니다. 이 때문에 토론이나 상생 문화가 정착될 수 없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 한 세대는 지나야 할 것으로 봅니다. "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포퓰리즘 정치인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포퓰리즘에 국민들이 쉽게 매혹되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은 한마디로 '간단하고(simple)' '쉬운(easy)' 정책입니다. 민족주의가 대표적입니다. 한국만 보더라도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가 얼마나 간단하고 쉽습니까. 게다가 한국은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 하다 보니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헤어나는 건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

▼프랑스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왜 프랑스에서 극우파가 활개칠까요.

"프랑스에서 극우파가 활개를 친다는 건 잘못된 표현 같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다만 매우 강한 극우파 세력을 갖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장 마리 르펜의 국민전선(FN)이 대표적이죠.근본적인 문제는 이민 때문입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민자들이 자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복지 혜택을 가져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이 활발하지 않은 한국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극우파는 이민자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

▼미 · 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자국 인권을 좀더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는데요.

"중국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자기들의 체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중국만큼 성공적인 공산당도 없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위안화 절상을 촉구해도 중국은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는 아무 죄가 없는데도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에는 보수파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당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기도 하고요. 공산당원들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맞물려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개혁이나 개방을 선택할 리가 없습니다. "

▼남북 관계에서 중국이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한국을 무력 침공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었습니다. 북한의 배후엔 항상 중국이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의 꼭두각시정권(puppet)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책임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

▼한 · 중 관계 발전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중국이 한국의 중요한 무역상대라는 점은 잘 압니다. 한국인은 중국 인권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경제고,인권은 인권입니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가 아닙니까. 중국에도 지적할 건 지적해야만 합니다. "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기 소르망 교수는

기 소르망 교수는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다방면에서 통찰력을 보이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스스로를 '자유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소르망 교수는 소르본대에서 문학을,동양어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후 명문 파리행정대학원(ENA)을 졸업했다. 1970년부터 파리 정치대 교수를 지냈다. 르 피가로,월스트리트저널,아사히 등 주요 언론에 칼럼을 실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스탠퍼드대 베이징대 모스크바대 등에서 경제학 · 정치철학 교수를 역임하는 등 세계 여러 대학의 초빙교수를 겸하고 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프랑스 총리 및 외무장관의 고문직을 지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프랑스 총리 자문역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2002년부터 프랑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09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고,'국가브랜드위원회'도 그의 조언에 따라 출범했다. '열린 세계와 문명 창조'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 '진보와 그의 적들' '세계는 나의 동포' 'Made in USA' '중국이라는 거짓말'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