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가 오는 4월4일 구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 슈미트는 지난 20일 트위터에 '더 이상 어른 감독은 필요하지 않다'고 썼다. 구글 블로그에는 CEO에서 물러나기로 한 배경을 정리해 올렸다. 구글은 슈미트가 이끈 10년 동안 세계 최고 검색 서비스 회사로 우뚝 섰다. 지금은 애플,페이스북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전투가 한창인 시점에 왜 물러나기로 했을까?

슈미트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면 이유는 명확하다. 경영구도를 단순화하기 위해서다. 구글은 그동안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과 전문경영인인 슈미트가 삼두체제로 이끌었다. 두 젊은 창업자와 노련한 전문경영인이 협의해서 결정하는 방식은 성장기에는 꽤 효율적이었다. 하루하루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슈미트는 '구글이 커지면서 경영이 복잡해졌다. 경영구도를 어떻게 단순화하고 의사결정을 신속화할지 오래 전부터 협의했다. 작년 말 지금이 경영구도를 바꿀 적기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썼다. 경영구도를 3인체제에서 1인체제로 바꿈으로써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페이지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슈미트의 설명대로 지금은 신속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 구글은 모바일 플랫폼 분야에서 애플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일단 개방형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로 애플 독주를 견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페이스북과 벌이는 소셜 서비스 싸움에서는 번번이 당하고 있다. '구글 버즈' '웨이브' 등의 서비스가 실패해 우수한 인재들이 떠났다.

슈미트는 '각자 역할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책임과 의무도 확실히 하기로 했다. 페이지는 제품개발과 기술전략을 맡고 4월4일부터 CEO를 맡는다'고 썼다. 브린은 전략 프로젝트,특히 신제품에 전념하고 자신은 파트너 협상,대정부 협의 등 대외업무와 두 창업자에 대한 자문을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페이지가 주도하는 구도다.

페이지는 구글 검색엔진 개발을 주도했던 유태계 창업자다. 1973년 미시간주립대 컴퓨터 · 과학 교수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과학잡지에 파묻혀 살았다. 미시간대 졸업 후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중 브린과 함께 구글 검색엔진을 개발해 1998년 구글을 창업했다.

페이지는 창업자금을 댄 벤처캐피털의 권유로 2001년 슈미트를 영입할 때까지 CEO 역할을 했다. 당시만 해도 검색 엔진을 개발했을 뿐 이것으로 돈을 벌 방안은 찾지 못한 상태였다. 2년 남짓 CEO 역할을 해봤다 해도 경영능력을 검증받았다고 보긴 어렵다. 10년 동안 슈미트에게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과연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페이지로서는 더 이상 슈미트의 '수렴청정'을 받기도 고약한 상황이다. 스물여섯 살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창업해 6년 만에 6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구글을 위협하고 있다. 열한 살이나 많은 페이지로서는 10년 배웠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CEO 교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슈미트가 한계를 보인 만큼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애플 페이스북과 한창 싸우는 판에 CEO를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도 있다. 구글로서는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한없이 슈미트에 의존할 수도 없고 시급한 판에 세 사람이 협의해서 결정하는 방식을 유지할 수도 없다. 페이지가 구글을 어떻게 바꿀지 궁금하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