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혔던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북한이 연초부터 잇따른 대화 제의에 이어 지난 20일 '남북 군사현안 해결'이라는 구체적 의제를 내세워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및 예비회담 개최를 제안했고 우리 정부도 이를 수용했다.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의 고위급 군사회담 요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 대화'를 촉구한 직후 나온 것이다. 북한은 이 기회를 활용해 먼저 군사회담을 제의함으로써 무력도발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희석시키고 남북 관계 주도권을 쥐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로서도 북한이 회담 의제를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데 대하여"라고 적시한 만큼 그 진정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우리 정부는 다음 주 중 구체적 예비회담 일정을 확정해 북측에 통보할 예정이다. 고위급 회담이 장관회담이 될지 차관회담이 될지 아니면 장성급회담이 될지는 아직 유동적이지만 사상 세 번째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 정부는 이와는 별도로 비핵화 고위급 회담을 제의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다는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지금 남북 대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고,북의 잇따른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화 자체가 단절되는 상황이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누차 입장을 밝혔듯,'대화를 위한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남북대화가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북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북은 "모든 군사적 현안들을 북남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해결할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동안 북이 적반하장식 태도로 일관해온 점을 생각하면 진정성을 갖고 사과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또다시 억지 주장을 되풀이하며 유야무야 넘어가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결코 적당히 봉합해선 안될 일이다. 이번만은 반드시 북한이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게 해야 한다. 정부도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와 추가 도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남북대화도 없다는 입장을 누누이 강조해 오지 않았는가. 아무리 미 · 중이 대화를 촉구해도 최소한 그 정도는 관철해야 국민들도 대화 재개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제 조건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에서 탈피하고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려는 북한의 의도에 또다시 말려들 우려만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