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최근 들고 나온 무상의료 · 무상보육 · 무상급식 등 '무상 시리즈'는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중산층의 표를 노린 정치적인 계산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복지'를 정치의 화두로 삼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지난 20일 정동영 민주당 의원 등이'복지는 세금이다'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21일에는 심재철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각각 복지토론회를 갖는 등 정치권은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보편적 복지는 재정 부담도 문제지만,근본적으로는 개인의 근검절약 정신과 자립심,자유추구 의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회안전망 vs 보편적 권리

보수진영에서는 복지를 '사회안전망'으로 본다. 개인이 스스로 삶을 책임지는 '자유'를 근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력을 했지만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 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는 시장경쟁에서 탈락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마련해 주는 장치"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무상급식 등 무상 시리즈는 그런 취지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복지가 '보편적 권리'라고 주장한다. '최소한의 삶'은 국가에 청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복지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라며 "시장에서 탈락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라고 여겨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개인자유 침해 vs 보장

보편적 복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개인이 원하는 서비스와 재화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 자체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립심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인간다운 삶을 얘기하면 굉장히 멋지게 들리지만 사실은 A의 월급을 절반을 떼어 국가에 내면 국가가 그것으로 A의 살림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세금을 안 떼고 놓아두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편적 복지는 개인의 자립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기본 원칙(사회안전망)에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진보진영에서는 그러나 복지를 제공하는 것,특히 모두에게 동등한 보편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대한다고 주장한다.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편적 복지는 낙인 효과가 없어 근로동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모든 복지국가는 보편주의를 지향하게 돼 있다"며 "복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급자를 감시하는 체계를 잘 구축하면 된다"고 말했다.

◆복지 효율성 따져봐야

보편 복지는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복지는 국민이 원하면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며 "문제는 정부와 민간이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느냐"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무조건 다 복지를 공급하도록 하면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수혜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립공원의 입장료를 폐지한 후 입장 인원이 급증해 관리비가 2배로 늘어난 것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진보진영에 속하는 이들도 선별 복지가 효율적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21일 천정배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보편복지는 굉장히 얇게 깔리는 것이기 때문에 선별 복지가 오히려 소득 재분배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진보진영이 보편적 복지를 대표상품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복지국가 담론이 급격히 부상한 것은 진보 · 보수 모두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비전과 전략이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경제사회적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정치권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은/이호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