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 1세대' 이민화씨(58)가 창업한 의료기기 전문업체 메디슨은 2000년대 초까지 승승장구했다. 세계 최초로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하는 등 성과를 내며 한때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서 50%가량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계열사를 20여개로 늘리는 무리한 사업확장 끝에 회사는 어음부도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씨는 2001년 대표에서 물러났다.

이후 2005년부터 메디슨 주식을 매수한 최대 주주 칸서스인베스트먼트3호 사모투자전문회사(2010년 9월 기준 40.9%)는 회사 부도 원인이 이씨와 전 임원들의 불법행위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경영 당시 고의로 수출채권을 회수하지 않는 등 잘못을 저질러 메디슨에 1230억원 상당의 손실을 안겼다는 것.피해자인 메디슨이 소송을 내지 않자 칸서스는 2007년 회사를 대신해 이씨 등에게 총 손해액 가운데 220억여원의 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3년 넘는 장고(長考) 끝에 법원은 최근 이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춘천지법 제2민사부(부장판사 이제정)는 "이씨 등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위반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선고했고,칸서스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칸서스가 주장한 대로 이씨 등이 1998~2001년 메디슨의 독일 일본 브라질 등 현지 판매법인에 초음파 진단기를 판 뒤 수출채권 220억원어치를 회수하지 않은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회사 운영이 정상화되지 않은 현지 법인에 대해 안정적인 운영자금을 확보케 한 경영상 전략"이라고 판시했다. 당장 수출대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새로운 물건을 수입하게 하는 것이 메디슨의 판로 확대에 유리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

이씨가 이번 판결로 법적 책임을 모두 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배임 혐의에 대한 형사판결을 앞두고 있다. 메디슨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계열사들에 총 535억원 안팎을 지원토록 한 뒤 해당 계열사들의 주식을 헐값에 매각해 회사에 112억여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 등이다.

1,2심 법원은 이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이씨가 메디슨으로 하여금 계열사 메디캐피탈의 대출 15억원에 대해 담보를 제공토록 한 혐의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경영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며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진행 중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