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2월3일) 명절을 열흘 정도 앞두고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채소 과일 육류 등 설 대목 수요가 많은 주요 생필품 가격이 작년 설에 비해 최고 2배 이상 올랐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번진 상황에서 한파와 폭설까지 겹치면서 출하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다.

가공식품과 공산품을 중심으로 물가 잡기에 나선 정부의 물가정책이 식품 원재료인 농 · 수 · 축산물 부문에선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생필품 가격 고삐 풀려

명절에 수요가 집중되는 사과 소매가격(농수산물유통공사 조사 기준)은 작년 설에 비해 54% 뛰었다. 사과 10개 상품(上品) 가격은 서울 영등포시장,부산 부전시장,대구 남문시장 등 전국 주요 재래시장과 슈퍼마켓에서 설을 12일 앞둔 지난 21일 평균 2만8922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설을 12일 남겨둔 2월2일엔 1만8778원이었다.

사과와 함께 명절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은 배 소매가격도 같은 기간 33.8% 올랐으며,겨울 과일인 감귤도 39.5% 상승했다.

채소 가격 상승률은 더 가파르다. 대파 1㎏ 소매가격은 4579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01.8% 급등했다. 파전 등의 재료로 사용돼 명절 수요가 많은 쪽파 가격도 같은 기간 상승률이 106.1%에 달했다. 쪽파는 최근 한 달간 63.3%나 올라 설 물가를 위협하는 주요 품목의 하나로 떠올랐다.

지난달 김장철이 끝나면서 안정세를 보였던 배추가격도 다시 오르고 있다. 포기당 소매가격은 4451원으로 한 달 사이에 23.1% 뛰었다. 작년 같은 시점과 비교하면 76.1% 상승한 것이다. 고구마와 감자 소매가격도 지난해 설에 비해 각각 35.9%와 18.5%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돼지고기 경락가격(축산물품질평가원 조사 기준)은 지난 21일 ㎏당 7042원으로 7000원 선을 뛰어넘어 구제역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약 두 달 전에 비해 81%, 1년 새 76% 뛰었다.

◆구제역에 폭설 · 한파 등 악재 겹쳐

김욱 농협 축산물공판장 경매실장은 "돼지고기는 건국 이래 최고 가격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겹살 등 돼지고기가 겨울에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품목인 데도 불구하고 가격이 급등한 것은 구제역으로 인한 공급량 감소 탓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구제역 발생 이전에 988만마리였던 돼지 사육두수 가운데 220만여마리가 살처분된 데다 상당수 돼지도축장까지 폐쇄되면서 돼지고기 유통망 자체가 마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실장은 "지금의 구제역 확산 속도로 볼 때 살처분 돼지 물량이 전체의 30%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며 "당분간 최고가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채소 가격은 폭설과 한파에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관계자는 "배추 등 노지채소뿐만 아니라 상추 등 시설채소도 이상 한파 때문에 제때 출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포기당 1만5000원까지 뛰어오르며 파동을 빚었던 배추는 연초 비수기에 접어들었지만,다시 가격이 꿈틀거리고 있다. 국내 월동배추의 70%가 생산되는 전남 해남지역에 내린 폭설과 혹한으로 인해 출하작업 지연은 물론 생육부진 현상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3월 학교급식 재개 등과 함께 수요가 늘어나게 되면 또다시 대란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