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예금 채권 등 안전자산만 좇던 시중자금이 주식 부동산 등 위험자산을 찾아가고 있다. 경기 회복에 따라 기대수익률이 높아진 투자자들이 낮은 확정금리에 만족하지 못해 '위험 부담'을 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초 가장 큰 특징은 외국인이 차익 실현 차원에서 처분하는 주식을 개인들이 대거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부동산시장이 꿈틀거릴 조짐이 나타나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도 흘러들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어떤 속도로 인상하느냐에 따라 지속 여부가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주식 대거 매수

주식투자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지난 20일 16조6076억원을 기록했다. 고객예탁금은 작년 말 13조7024억원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서만 2조9052억원 늘었다. 고객예탁금은 지난해 5월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 당시 16조6033억원을 기록한 뒤 12조~15조원대를 유지해 왔으나 올 들어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CMA 잔액도 11일 45조3257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최근 소폭 감소,20일에는 43조7911억원을 기록했다. CMA 계좌 수는 20일 약 11146만개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객예탁금과 CMA 잔액을 합치면 현재 증시 주변의 대기자금만 약 60조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거액의 자금이 증시 주변을 맴돌면서 최근 들어선 개인들도 주식 '사자'에 나서고 있다. 개인들은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5539억원 순매도했고,외국인은 3조6280억원 순매수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24일까지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6421억원으로 급감한 반면 개인은 1조1586억원의 매수 우위를 보였다. 개인이 외국인의 빈 자리를 메우면서 코스피지수도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돌파했던 2007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식형펀드가 담당했던 역할을 최근에는 자문형 랩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서도 펀드 환매 행진이 지속되면서 국내 주식형펀드(ETF 제외)에서 1조8662억원이 순유출됐다.

반면 최근 들어 증권사들이 목표전환형 자문형 랩을 적극적으로 판매한 영향으로 국내 10대 증권사의 자문형 랩 잔액은 6조6763억원(21일 기준)으로 올 들어서만 1조4506억원 늘었다.


◆은행 수신은 제자리걸음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은행의 저축성예금은 4조8000억원가량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빠졌던 은행 자금 중 일부가 은행으로 되돌아온 것이며 은행 수신이 본격적으로 증가했다고 보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전체 수신액은 지난해 11월 1조8700억원,12월 8조7200억원 줄었다.

은행 정기예금도 지난해 11월 2조2500억원,12월 9조3400억원 감소했다. 은행 관계자들도 "현재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어 고금리 수신 경쟁은 벌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자금은 대신 주택담보대출 방식으로 부동산으로 흘러들고 있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은 3조8000억원(모기지론 양도 포함) 늘어 1년6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8월까지만 하더라도 1조7000억원 증가에 그쳤지만 9월 2조7000억원과 10월 2조7000억원,11월 3조5000억원 등으로 급증 추세다.
PB센터 관계자는 "대형 빌딩이 매매되기 시작했으며 올해 전반적으로 부동산시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위험자산으로의 자금 이동은 금리 수준에 달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현재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4% 수준.코스피지수가 2008년 말 1124에서 지난해 말 2047로 뛰어 2년간 2배 정도 오른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예금 금리가 연 6% 수준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지나치게 낮은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사실상 마이너스다.

전문가들은 은행으로 자금이 U턴하기 위해선 예금 금리가 연 5% 수준은 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보다 1%포인트 이상 금리가 높아져야 자금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도 "현재처럼 저금리가 지속되고 유동성이 실물활동에 비해 많은 상황에서 시중자금이 고수익을 찾아다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동윤/박준동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