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장벽 없는 하나의 시장으로 엮으려면 무역장벽을 철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업시장 개방은 물론 국별로 서로 다른 노동기준,환경규제,경쟁정책,특허제도,정부조달 정책,투자보호 정책 등 각종 통상조건을 통일된 세계표준(global standard)으로 조정해야 한다.

예컨대 노동조합 활동을 금지하는 나라는 허용하는 나라보다 인건비가 그만큼 저렴할 것인데 이런 조건을 방치한 채 시장을 개방하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전 분야의 세계화를 주도할 국제기구 WTO가 2001년 야심차게 시작한 도하라운드(Doha Round)는 이런 문제들을 다루려는 다자간 협상이었다. 도하라운드는 특히 농업 개방,지식재산권 보호 확산,서비스 교역 자유화 등 국제교역을 확대함으로써 빈곤 국가들의 경제 개발에 초점을 맞춘 의제를 많이 준비했기 때문에 도하개발아젠다(Doha Development Agenda · DDA)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미국 EU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그룹과 브라질 중국 인도 등 주요 개도국 그룹이 농업시장 개방을 두고 서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현재로서는 타결 전망이 요원한 상태다.

도하라운드의 좌절에 실망한 각국은 적절한 파트너를 찾아서 두 나라 사이의 쌍무적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 FTA) 체결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사실 선진국들은 한편으로는 다자간 통상협상을 기조로 삼는 WTO의 출범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FTA 체결을 동시에 벌여왔다. NAFTA와 EU가 그것이다. 물론 NAFTA와 EU가 쌍무적 FTA는 아니지만 일부 국가가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WTO와 별도로 자신들끼리 통상협정을 체결한다는 점에서는 FTA와 차이가 없다.

FTA는 WTO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상품 무역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통상활동의 조건에 대해 합의한다. FTA를 체결한 나라들끼리는 무역 서비스 투자 등 모든 영역에서 교역 규모를 크게 늘려오고 있다. 수많은 나라가 서로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지구본 위의 세계지도에 체결국끼리 연결하면 국수발 같은 곡선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데 이 모습을 '스파게티 사발(spaghetti bowl)' 이라고 부른다.

FTA마다 서로 다른 통상조건을 담고 있으므로 세계표준을 추구하는 WTO의 이상과는 어긋나지만,교역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거둔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도하라운드가 표류하는 상황에서도 전 세계는 개방과 자유화의 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FTA 체결을 거부하면 국제교역에서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