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로 어느 때보다 그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세금의 진실을 감춘 기만적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거세자 당내에서 증세 논쟁을 벌이는 모습도 보인다. 허황된 선동,'노이즈 마케팅'인 줄 알았더니,스스로 타당성을 검증하고 대안을 찾는 수권 정당의 인상을 심는 효과가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전히 뒷북이다. 민주당의 무상급식 · 무상의료 · 무상보육 · 반값 등록금 등 소위 '3+1' 복지세트를 공격하지만,'세금폭탄론'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대안 없는 비판뿐이다. 오히려 질세라 복지 포퓰리즘 경쟁에 빠져들고 있다. 안상수 대표의 '70% 복지'나,박근혜 전 대표의 '한국형 복지'가 그렇다.

분명한 건 복지가 내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것도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을 통한 '큰 복지'가 아니라 퍼주기식의 '작은 복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국민복지(national welfare)가 이뤄지는 나라가 가장 발전된 단계의 국가 형태다. 복지는 민주정부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선(善)인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복지에 목말라 있다. 성장의 그늘에 감춰졌던 양극화,일자리 부족,심각성을 더해가는 고령화가 주된 배경이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일자리 구하기,궁핍하지 않은 노후생활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에게 복지만큼 매력적인 구호는 또 없다. 이미 지난해 6 · 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의 파괴력이 입증됐듯,복지 포퓰리즘은 쉽고 단순하며 감성적이어서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하지만 '무상'은 틀린 말이다. 공짜가 아니라 내가 내는 돈으로 정부가 생색내는 '세금복지'다. 그럼에도 당장 내앞에 고지서가 날아오지 않는 한 세금은 별로 실감되지 않는다. 지금 돈을 당겨 쓰고 세금 빚은 미래 세대에 넘기는 '외상복지'라면 더하다. 정치인들이 세금을 지금보다 배는 더 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다.

결국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쪽에서 부유세(富裕稅) 얘기가 나왔다. 양극화의 틈새를 파고들어 부자에 대한 서민층의 반감을 자극하는 회심의 카드로 판단했음 직하다. 부자들로부터 돈을 더 걷어 못 사는 사람들에게 뿌리겠다는 주장은 명분도 좋고,그렇지 않아도 박탈감이 깊은 사람들의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다.

아닌 게 아니라 부유세야말로 복지국가의 상징이었다. 복지천국 스웨덴을 비롯해 1980년대까지 유럽 14개국이 부유세를 도입했었다. 하지만 부의 재분배라는 좋은 의도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부의 해외 유출,기업가정신의 실종,국가경쟁력의 심각한 훼손을 불러오는 경제의 독(毒)으로 작용하면서 재정수입 감소로 인해 오히려 빈곤층을 위해 써야 하는 재원까지 부족해지는 상황이 됐다. 결국 2000년대 들어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 이어 부유세의 원조 스웨덴도 2007년 이 제도를 없앴다.

이미 악법으로 판명난 부유세 논의는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는 2%의 부자로부터 2조~3조원을 더 걷자고 '한국판 부유세'인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그게 어떤 문제를 낳았는지,집값이 다락같이 올라 집없는 서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설명할 것도 없다. 부유세나 과잉복지는 빈곤계층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꼭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기존의 복지체계마저도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

2차대전 이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세웠던 영국은 과도한 복지로 인한 '영국병'으로 결국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아마 그 영국에서 공부한 정치학자 출신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추창근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