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법원은 25년형을 선고받고 13년째 복역중이던 그레고리 테일러의 석방을 명령했다. 스탠퍼드 로스쿨 학생들이 낸 청원을 받아들인 결과다. 테일러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자 판사는 연민 어린 눈길로 휴지를 건네라고 했다. 언론들은 '현대판 장발장'이라며 상세하게 보도했다. 테일러가 구속된 건 14년 전이다. 한 교회에서 음식을 훔쳐 먹으려다 붙잡혔다.

사소한 잘못이었지만 3회 이상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가중처벌되는 '삼진아웃법'에 따라 중형을 받았다. 이미 10달러가 든 지갑을 훔친 죄와 행인의 주머니를 털려던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생계형 범죄였으나 법 규정 때문에 가혹한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스쿨 등을 중심으로 '너무 심하다'는 여론이 확산되자 법원이 석방 판결을 내린 것이다.

주경야독의 고된 생활을 하던 중 절도죄로 불구속 입건된 전주의 '장발장 대학생'에게 온정이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대학 1학년인 이 모군은 낮엔 공부하고 밤엔 공장에서 일해왔으나 당뇨병을 앓던 어머니에게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어느날 영어문법책과 점퍼 등을 훔쳤다. 점퍼는 밤에 공장을 오가는데 너무 추워서,문법책은 공부에 꼭 필요해서 손을 댔던 모양이다. 조사과정에서 "도무지 용서가 안되는 죄를 저질렸다"면서 눈물을 쏟는 이군의 딱한 처지에 경찰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사연이 알려지자 '연락처와 계좌번호를 알고 싶다''등록금을 대겠다'는 등 경찰서로 걸려온 전화만 백여통이란다. 광주에서 신문배달을 한다는 한 중년은 "어떻게든 학업을 이어가길 바란다"면서 10만원을 부쳤고,영어학원 강사는 "공부를 하고 싶어 책을 훔쳤다니 너무 마음 아프다"며 각종 영어교재를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서점 등 피해자들도 한결같이 선처를 부탁했다.

생계형 범죄도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기에 명백한 범법이다. 그렇다고 법을 어기면 안된다고 양심과 도덕에만 호소하기도 어렵다. 벌금을 낮춰 구형하고 기소유예를 확대하는 방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그보다는 최소한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정비하는 등 능동적 대책을 마련하는게 먼저다. '박연차게이트''함바게이트' 같은 지도층 비리를 뿌리 뽑아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