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내고 싶은 만큼 내게 했더니 '대박'…가격 책정의 마술
2007년 9월 영국의 올터너티브 록 밴드 라디오헤드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최신곡 10곡을 수록한 앨범 'In Rainbows'를 내려받는 팬들에게 정가를 제시하는 대신 원하는 만큼 값을 치도록 한 것.그해 10월 말,이 판매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앨범을 내려받은 사람은 180만명을 넘었고,그 중 40%가 평균 2.26달러를 지불했다. 전통적인 앨범보다 더 많은 20~30달러를 낸 사람도 적지 않았다. 라디오헤드는 그때까지 발매한 모든 음반들의 온라인 판매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이 음반으로 벌었다.

《스마트 프라이싱》은 이 같은 사례를 비롯해 다양한 가격책정의 방법을 보여주며 기업 경영자들에게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보다 '스마트하게' 정하도록 촉구한다. 공저자 중 자그모한 라주는 와튼스쿨의 마케팅학과장이고,존 장은 마케팅 교수다.

이들에 따르면 경영자가 기업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조정할 수 있는 레버는 판매량,변동비용,고정비용,가격 등 네 가지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단연 가격이다. 다른 모든 요인이 같다고 할 때 판매량,고정비용,변동비용을 1% 조정해 늘릴 수 있는 수익성의 범위는 2.45~6.52%다. 그러나 가격을 1% 조정하면 수익성은 10.29% 늘어난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가격 조정을 꺼린다. 체계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가격을 정하지도 않는다. 산출된 평균비용에 이윤을 더해 정하거나(비용가산 가격책정),경쟁사의 제품 값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하거나(경쟁기반 가격책정),고객들이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파악해 그에 맞게 각각 달리 정할(고객기반 가격책정) 뿐이다.

비용가산 가격책정은 그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고,경쟁기반 가격책정은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소비자 기반 가격책정은 능란한 흥정가보다 비싸게 산 고객들의 불만과 원성을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다 다양하고 현명한 가격책정 전략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책에 담긴 대안과 사례는 다양하다. 라디오헤드처럼 원하는 대로 지불하는 방식은 이미 많은 곳에서 성공 사례를 남기고 있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원 월드 카페는 저녁식사비를 따로 받지 않지만 지난해 35만달러의 수익과 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일반적인 소규모 음식점의 이윤폭(4~6%)과 비슷한 수준이다.

구글은 세계 최강의 검색엔진을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구글 창업자나 경영자들이 자비로워서일까. 저자들은 "구글이 더 많은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할수록 더 많은 것을 고객으로부터 돌려받는다"고 설명한다. 고객들은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의 시간과 주의,관심을 지불한다는 것.구글은 이를 광고주들에게 팔아 이익을 낸다. 위키피디아도,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하찮게 여기는 푼돈의 효과에 주목하는 전략은 소비자들이 의미를 두지 않을 만큼 작은 단위로 분할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술이다. 10달러짜리 제품의 가격을 9.99달러로 매기는 것은 5%의 판매량 증대효과를 가져온다는 게 70여년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하루 1페니'로 설명하는 가격전략은 고객이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카지노들조차 푼돈으로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을 겨냥한 슬롯머신을 늘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뉴욕의 의류 소매기업 심스(Syms)는 독창적인 자동할인 시스템을 적용한다. 전국적으로 광고되는 '심스 가격'과 옷이 매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매긴 가격,10일이 지날 때마다 이전보다 낮아지는 세 개의 가격으로 영업하는 것.고객들은 점찍어둔 옷이 언제 세일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저자들은 이 밖에도 허영심리를 자극하는 고가 정책,사용 후 지불방식 등 다양한 가격전략을 소개하면서 "가격을 올바르게 정하는 것은 예술이자 과학"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히 가격을 정하지 말고 고객에 대한 깊은 지식,경제적 직관,현장 감각의 3박자를 갖추고 '똑똑한 가격'을 매기라는 얘기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