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가는 '소수민족 리스크'] '러시아의 화약고' 北캅카스…강경 진압 vs 극한 테러 '피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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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워치
체첸ㆍ다게스탄 등 소수민족 밀집
천연자원 풍부…러 "독립 불가"
메드베데프 다보스 참석 前 테러
주가 폭락…외자 유치 '발목'
대선ㆍ올림픽ㆍ월드컵도 '비상'
체첸ㆍ다게스탄 등 소수민족 밀집
천연자원 풍부…러 "독립 불가"
메드베데프 다보스 참석 前 테러
주가 폭락…외자 유치 '발목'
대선ㆍ올림픽ㆍ월드컵도 '비상'
"회복세를 보이던 러시아 경제가 또다시 '테러 리스크'에 직면했다. "(CNN)
잇따른 대규모 테러로 러시아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 자폭 테러가 발생해 35명이 사망하고 180여명이 부상당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로 40명이 사망한 지 불과 10개월 만이다.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북캅카스 지역 소수민족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같은 테러는 해외투자 유치에 목마른 러시아에는 떨어내야 할 아킬레스건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민족 갈등에는 막대한 지하자원 등 경제적 이권이 얽혀 있다. 천연자원에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로선 쉽사리 물러설 수 없다.
◆분쟁 끊이지 않는 북(北)캅카스
'러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북캅카스 지역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이란),투르크(터키),러시아의 세력 각축장이었다. 1828년 러시아가 이 지역을 합병했고 20세기엔 소련이 통치했다. 1991년 옛 소련이 무너졌으나 북캅카스의 체첸,다게스탄,잉구셰티야 등 7개 자치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에 남았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강인한 투쟁성으로 '캅카스의 늑대'로 불리는 체첸이다. 체첸은 옛 소련이 해체되자 러시아로부터 가장 먼저 분리독립을 추구했다. 특히 1994년과 1999년 벌어진 1 · 2차 체첸 전쟁에선 30만명 이상이 죽고 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등 대규모 참사가 빚어졌다. 러시아 정부는 체첸에 친러 정부를 수립해 지원하고 있지만,분리독립을 요구하는 1000여명의 체첸반군은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며 러시아를 대상으로 테러를 벌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지난 26일 "이번 공항 자폭 테러는 체첸과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발언의 구체적 근거는 대지 못했다. 러시아투데이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해 말 크렘린궁 인근에서 자폭 테러를 하려다가 실패한 체첸인들이 이번에 공항 테러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유력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검은 과부'가 소속된 북캅카스 반군이 기획한 테러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은 과부는 북캅카스 지역의 이슬람계 테러단체로 러시아 당국에 남편이나 형제 · 자매를 잃은 젊은 여성들이 주축을 이룬다.
◆도미노 우려…천연자원 등 경제이슈도
로이터 등 외신들은 "러시아가 북캅카스 지역에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반군들이 테러로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고메드 바하예프 하원 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공항 테러는 다게스탄과 잉구셰티야 공화국 등에서 러시아 특수부대가 수행하고 있는 대(對) 테러전에 대한 보복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지난해 12월에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에서 러시아인을 상대로 테러를 모의 중이던 12명의 반군을 제압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에 대해 "이번 테러는 러시아 정부의 북캅카스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이들 지역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주장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독립 투쟁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도미노 분리독립 요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러시아는 약 160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 체첸 등 특정 공화국이 분리되면 다른 이슬람 계통 공화국들의 독립주장에 힘이 실린다.
막대한 지하자원도 러시아가 이 지역의 독립을 필사적으로 막는 이유 중 하나다. 캅카스에는 석탄 철광석 몰리브덴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며 상당량의 석유 ·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체첸은 연 260만t의 원유를 생산하는 자원부국으로 그로즈니 유전은 러시아의 중요한 석유 공급원이다. 특히 카스피해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흑해 연안의 노보로시스크 항으로 수송하는 송유관이 체첸 영토를 지나고 있어 러시아 입장에서 체첸의 독립은 곧바로 송유관 통과료 부담으로 이어지게 돼 있다.
◆대형 이벤트 잇따라… 테러기승 예상
이번 테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를 위한 세계경제포럼(WEF · 다보스포럼) 연설을 앞두고 일어났다. 외국인 사상자까지 나와 러시아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하철,국제공항 등 도심 한복판에서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자 현지 투자와 기업 설립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졌다. 테러가 발생한 24일 러시아 MICEX 지수는 장중 2.4% 떨어졌고 다음 날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공항 테러 직후 다보스포럼 불참을 검토했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당초 일정대로 기조연설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러시아의 현대화 성과를 소개하며 투자를 요청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테러범들은 나를 이곳 다보스에 오는 것을 좌절시킬 것이라고 기대했겠지만 오산"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유치한 FDI는 2008년 한 해 750억달러에 달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09년 400억달러에 그쳐 거의 반토막이 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테러는 WEF에서 외자유치에 나설 러시아 정부에 타격을 주기 위해 모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대선과 2014 동계올림픽, 2018 월드컵 등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있어 테러가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