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한자교육이 그랬다.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고 한글전용 교육을 실시하는 바람에 그때 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는 간단한 한자도 읽고 쓸 줄 몰랐다. 한자 문화권에 살면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은 정부의 무지하고 무모한 실험정신에 우리는 철저히 희생됐고,그 탓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한국인의 후예 중 유독 우리만 선조들이 남긴 기록들을 해독하지 못하는 겨레사의 미아(迷兒)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글 전용이 상황이나 사물의 인식을 획일화한다는 비판은 논외로 치더라도,2000년이 넘는 기록물 가운데 한글로 쓴 50년 정도만 간신히 읽는,그야말로 신흥공업국의 무식한 자손들이요,주변국과 소통은 고사하고 제 나라 역사조차 읽지 못하는 희대의 까막눈 세대가 돼버린 것이다.

오늘날 한자 문화권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감안하고 심지어 서양에서까지 한자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현실을 참작하면 그때 우리 교육부 관리나 대통령을 위시한 정책입안자들이 얼마나 근시적인 청맹과니들이었는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정권의 속성이나 필요에 따라 교육내용이 오락가락한 사례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예컨대 한민족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준 신라에 대한 평가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우리 세대는 통일신라의 위대함을 배우며 자랐지만 우리 자식 세대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망시켰다며 신라라는 국호조차 부끄럽게 여긴다. 당시엔 동족이란 개념이 없었고 엄밀히 동족도 아니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듣지 않고,저희나 우리나 그렇게 물려받은 통일국가를 둘로 나눠 사는 어쭙잖은 주제로 역사에서 통일정신을 배우려 들지도 않는다.

그런가 하면 숱한 국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외세와 담을 쌓고 말끝마다 자주와 주체를 부르짖는 폭력적인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또 기성세대보다 신세대가 한결 호의적이다.

좌든 우든 정권은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면 그만이지만,편향된 교육이 만든 후유증은 고스란히 사회로 이관되어 세대 갈등의 주요인(主要人)으로 작용한다. 분단 현실의 특수성 때문에 사상 논쟁의 여지가 많은 우리 사회에서 이런 후유증은 사안에 따라 가히 치명적일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천안함이 그렇고,연평도가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오락가락하던 역사교육이 아예 사라질 뻔했다가 시쳇말로 저승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왔다. 국민 92%가 공감하는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선택과목과 필수과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당국자들만 빼놓고 모르는 이가 없다. 역사와 언어는 겨레의 근원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도 한국사와 한국어를 가르치면 한국인이 된다. 거꾸로 아무리 한국에서 났더라도 한국사와 한국어를 알지 못하면 그를 한국인이라고 할 수 없다.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바람에 속칭 좌편향,우편향의 교육 기조가 일정 기간을 두고 번복되는 현실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개탄스러운 건 글로벌 운운하며 역사를 안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한 지난번 정책입안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공직에 있는 한 우리 교육은 언제든지 또 저승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번 한국사 필수과목 지정과 역사교육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고위 당 · 정 · 청 협의회와 교과부의 결정이 실효를 거두려면 우선은 각 대학들에서 역사과목 입시 반영률을 높이는 협조가 뒤따라야겠지만 내용 면에서도 학계의 폭넓은 재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근현대사뿐 아니라 고대사에까지도 그릇되고 편향된 사관(史觀)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왕 바로잡으려고 나섰다면 선언적인 구호 이전에 교육할 내용부터 면밀히 재검토해주기 바란다.

김정산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