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정을 느끼고 삶의 위안을 찾아야 할 설 연휴가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고부갈등에 며느리의 시누이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이로 인해 부부 불화가 싹튼다.

30대 초반의 며느리들 중 상당수가 명절 1주일 전부터 소화가 안 되고,머리가 아픈 고통을 호소한다. 소화제나 두통약을 먹어 보지만 쉽게 호전되지 않는다. 이 같은 '명절증후군'은 가족들이 주부의 가사노동을 당연시하고 고마워하지 않는 데서 싹튼다. 연중 강도가 가장 높은 휴일 가사노동에 대해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더욱이 핵가족 사회에서 곱게 자란 젊은 며느리들은 자존감이 강하고 참을성이 적다. 사회적 · 문화적 · 계층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린 기회도 적다. 이런 며느리들이 갑자기 명절을 계기로 이질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없었던 갈등이 생기고 일시적으로 편입된 대가족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감과 피로를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불현듯 배나 머리가 아프고,온몸에 힘이 빠지며 쑤시는 신체적 증상까지 나타나게 된다.

이럴 땐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떨치고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이 가사노동을 분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연휴 마지막날에는 노래방,극장,공연장,고궁 등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게 좋다. 처가에 함께 가거나 아내가 절친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명절로 인한 우울함은 대개 2주일 안에 해소되지만 그 이상 지속되면 만성화돼 주부 우울증으로 진행할 수 있으므로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중요하다.

명절 끝에 부부가 다투는 가장 흔한 싸움의 주제는 '상대방 부모에게 소홀하고 무관심한 것'이다. 부부는 결혼하면서부터 연애시절에 알지 못했던 배우자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고 실망하며 때론 상대를 비난하게 된다. 부부는 타고난 기질,부모의 성격,가족 구성원 간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경제 수준,돈에 대한 태도,인생관 등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하는 게 당연하다. 부부는 서로 '내가 당신 때문에 이렇게 불행한데 너는 꿈쩍도 않는다''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완전히 변했다'고 탄식하거나 분노하기 일쑤다.

이런 경우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변화하길 기대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바람직하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수록 실망도 커지게 마련이다. 기대치를 낮추고 실망하게 된 원인을 찾아 개선할 수 있는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 마음속을 털어놓는 게 긴요하다. 상대가 '당연히 알아주려니' 생각하고 허심탄회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마음의 문은 이내 닫히고 원망만 쌓이기 때문이다. 다툴 때는 서로 존댓말을 쓰고 주제에 집중해 짧게 끝내는 게 좋다. 해묵은 감정을 꺼내 상대방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제까지 건드리지 않도록 한다. 싸움을 끝낼 땐 상대방에게 한마디라도 더 칭찬해줄 수 있는 아량을 베푼다. 감정이 격할 때는 따로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하민 < 근로복지공단 안산산재병원 정신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