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8일 "구제역 해결 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정치권 등에서 불거지고 있는 책임론 공방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인 유 장관이 구제역 사태로 인한 정치적 입지 약화를 우려해 국회에 서둘러 복귀하려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유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예정에 없는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구제역 사태에 대한 심경을 피력하고 자신의 거취 문제를 상세히 밝혔다. 그는 "구제역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장관이 질 것이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공직자의 본분을 지키겠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유 장관은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치권에서 자신을 겨냥해 책임론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해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최근 백신 접종으로 인해 구제역이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 사태 종식을 속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은 오로지 사태 해결에 모든 생각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이며 책임론 등 정치적 논란이 일게 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구제역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지금은 사태 해결이 급선무인 만큼 정치 공방을 자제해 달라는 불만을 나타낸 셈이다.

유 장관은 또 이번 구제역 사태가 총체적인 정책 실패 또는 자신과 농식품부의 무책임이나 무능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도 일정한 선을 그었다. 그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있고 시간이 지나면 책임 소재도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정치인은 시시비비를 떠나 결과에 대해 깨끗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스스로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지만 이번 구제역 사태에 대한 책임과 인과 관계의 진실은 더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미로 풀이된다.

유 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참모진 내에선 유 장관 책임론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한 참모는 "유 장관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며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고 하지만 발견 당시 이미 방역선을 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지났고 살처분의 적절성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말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유 장관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사태 수습과 방역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봐야 한다"며 "사의 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유 장관이 국회의원 출신 장관 중 유일한 친박(친박근혜)계라는 점에서 계파 간 갈등을 고려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지만 유 장관이 사퇴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을 경우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서욱진/홍영식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