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설] "조금만 기다리세요"…마음은 벌써 고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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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석화씨의 설날은…
세배 한 번이 365일 보장해 준다면 열번 스무번 올려 어머니 붙들고 싶어
세배 한 번이 365일 보장해 준다면 열번 스무번 올려 어머니 붙들고 싶어
다시 365일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걸음은 낯설고도 조심스럽고 한 해의 중량에 벅차면서도 간절한 기원을 안고 있다. 이제 이틀 뒤면 '설'이다. 순수 우리말인 설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의 '사리다'(愼 · 삼가다),나이를 댈 때 몇 살 하는 '살',한 해를 세운다는 '서다',낯선 그 무엇을 나타내는 '설다'….
하지만 내게 '설'은 어머니가 쓰러지신 2000년부터 지금까지 11년째,선조 때 학자 이수광이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는 날로 의미가 축소된다. 그것은 '내년 설'을 기약할 수 없는,하루하루 사그라져 가는 어머니의 병세 때문이다.
친지의 주선으로 안동에 있는 요양원으로 어머니가 가신 지 올해로 9년째.그동안 한 달에 한 번 찾아뵐 때마다 이것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정말 컸다. 돌아올 때면 어머니를 향해 흔드는 손이 가시가 박힌 것처럼 쓰라렸던 것도 '다음'을 기도하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 한마디도 그것이 내가 듣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될까 봐 온몸이 커다란 귀가 되는 세월을 살고 있는 내게,특히 음력으로 일 년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 설은,'달도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것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마지막 세배가 되는 건 아닐까. 절을 하며 굽힌 허리와 머리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면,이미 젖은 내 눈에 비치는 어머니는 물을 건너는 사람처럼 아득해 보여 등줄기에 건너지 못할 다리가 뻣뻣하게 서느라 온몸이 아프다. 다음 설까지는 다시 365일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하는데,내년에도 어머니는 딸의 세배를 받아주실 것인가. 그렇게 내게 '딸'이라는 타이틀을 좀 더 지니게 해 주실 것인가.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어머니마저 안 계시면 나는 '딸'이라는 사랑스럽고 어여쁜 타이틀을 영원히 잃는다.
세상의 딸들에게 친정이란 어머니가 계신 곳이다.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신 후 제일 부러웠던 게 '명절에 친정 간다'는 친구들의 말이었다. 어머니 쓰러지시고 요양원으로 옮기신 후부터는 무남독녀인 나는 찾아갈 친정도 사라졌다. 물론 어머니가 계신 곳이 친정이라면 요양원이 지금의 내겐 친정이다. 하지만 내 유년과 청소년기,대학시절을 거쳐 결혼 전까지의 시간과 무엇보다 건강한 어머니가 계시던 집,그런 친정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누구보다도 세련되고 멋쟁이였던 어머니가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필요 없어진 건 예쁜 옷,예쁜 구두였다. 그래서 백화점에는 없는 편한 옷을 찾으려고 시장으로 가면서 나는 그동안 참 많이도 울었다. 건강하실 때 한 벌이라도 더 사드리고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실 수 있을 때 예쁜 구두 한 켤레라도 더 사드릴 걸.구하기도 힘든 고무줄 허리 바지와 앞 터진 스웨터,신고 벗기에 편한 실내화를 찾으러 시장을 헤매다 보면 먹먹해진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러면서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 선물 사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이나 후배들한테 고해성사하듯 말하곤 한다.
"어느 날,정말 어느 날,예고 없이 일어나는 교통사고처럼,그 어떤 것도 부모님께 필요 없어질 때가 오더라.그런 날이 오기 전에 돈 없으면 카드를 긁어서라도 예쁜 옷과 구두 많이 사 드려.입히고 신겨 드리고 싶어도 부모님 몸이 거부하는 날이…정말 오기 전에."
낼 모레면 설이다. 다시 365일을 선물 받는 날이다. 365일 뒤엔 다시 또 설이 올 것이다. 그러나 아픈 어머니를 가진 내겐 또다시 올 설이 막막하고 두려운 동시에 간절한 소망이 된다. 설날 올리는 세배가 어머니에게 다시 365일을 보장해준다면 나는 이번 설에 열 번 스무 번 세배를 올려서라도 어머니를 붙들고 싶다. 한 해를 세우는 '서다'라는 의미의 설로 말이다.
건강하신 부모님을 가졌다면,부모님이 계시는 시댁과 친정이 있다면,그것만으로도 '설'은 선물이요 축복이다. 세배를 올리면서 내년 설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당신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평화로운가. 얼마나 따뜻한 부자인가. 그런 당신들의 설은 얼마나 신나는 축제일인가.
부모님이 병석에 있거나 세상에 안 계시는 사람들에겐 '달도일'일 수도 있는 게 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서럽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힘내라는 기합을 크게 바친다.
하지만 내게 '설'은 어머니가 쓰러지신 2000년부터 지금까지 11년째,선조 때 학자 이수광이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는 날로 의미가 축소된다. 그것은 '내년 설'을 기약할 수 없는,하루하루 사그라져 가는 어머니의 병세 때문이다.
친지의 주선으로 안동에 있는 요양원으로 어머니가 가신 지 올해로 9년째.그동안 한 달에 한 번 찾아뵐 때마다 이것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정말 컸다. 돌아올 때면 어머니를 향해 흔드는 손이 가시가 박힌 것처럼 쓰라렸던 것도 '다음'을 기도하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 한마디도 그것이 내가 듣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될까 봐 온몸이 커다란 귀가 되는 세월을 살고 있는 내게,특히 음력으로 일 년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 설은,'달도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것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마지막 세배가 되는 건 아닐까. 절을 하며 굽힌 허리와 머리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면,이미 젖은 내 눈에 비치는 어머니는 물을 건너는 사람처럼 아득해 보여 등줄기에 건너지 못할 다리가 뻣뻣하게 서느라 온몸이 아프다. 다음 설까지는 다시 365일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하는데,내년에도 어머니는 딸의 세배를 받아주실 것인가. 그렇게 내게 '딸'이라는 타이틀을 좀 더 지니게 해 주실 것인가.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어머니마저 안 계시면 나는 '딸'이라는 사랑스럽고 어여쁜 타이틀을 영원히 잃는다.
세상의 딸들에게 친정이란 어머니가 계신 곳이다.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신 후 제일 부러웠던 게 '명절에 친정 간다'는 친구들의 말이었다. 어머니 쓰러지시고 요양원으로 옮기신 후부터는 무남독녀인 나는 찾아갈 친정도 사라졌다. 물론 어머니가 계신 곳이 친정이라면 요양원이 지금의 내겐 친정이다. 하지만 내 유년과 청소년기,대학시절을 거쳐 결혼 전까지의 시간과 무엇보다 건강한 어머니가 계시던 집,그런 친정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누구보다도 세련되고 멋쟁이였던 어머니가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필요 없어진 건 예쁜 옷,예쁜 구두였다. 그래서 백화점에는 없는 편한 옷을 찾으려고 시장으로 가면서 나는 그동안 참 많이도 울었다. 건강하실 때 한 벌이라도 더 사드리고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실 수 있을 때 예쁜 구두 한 켤레라도 더 사드릴 걸.구하기도 힘든 고무줄 허리 바지와 앞 터진 스웨터,신고 벗기에 편한 실내화를 찾으러 시장을 헤매다 보면 먹먹해진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러면서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 선물 사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이나 후배들한테 고해성사하듯 말하곤 한다.
"어느 날,정말 어느 날,예고 없이 일어나는 교통사고처럼,그 어떤 것도 부모님께 필요 없어질 때가 오더라.그런 날이 오기 전에 돈 없으면 카드를 긁어서라도 예쁜 옷과 구두 많이 사 드려.입히고 신겨 드리고 싶어도 부모님 몸이 거부하는 날이…정말 오기 전에."
낼 모레면 설이다. 다시 365일을 선물 받는 날이다. 365일 뒤엔 다시 또 설이 올 것이다. 그러나 아픈 어머니를 가진 내겐 또다시 올 설이 막막하고 두려운 동시에 간절한 소망이 된다. 설날 올리는 세배가 어머니에게 다시 365일을 보장해준다면 나는 이번 설에 열 번 스무 번 세배를 올려서라도 어머니를 붙들고 싶다. 한 해를 세우는 '서다'라는 의미의 설로 말이다.
건강하신 부모님을 가졌다면,부모님이 계시는 시댁과 친정이 있다면,그것만으로도 '설'은 선물이요 축복이다. 세배를 올리면서 내년 설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당신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평화로운가. 얼마나 따뜻한 부자인가. 그런 당신들의 설은 얼마나 신나는 축제일인가.
부모님이 병석에 있거나 세상에 안 계시는 사람들에겐 '달도일'일 수도 있는 게 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서럽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힘내라는 기합을 크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