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전세난 외면하는 복지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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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인 1990년 봄.서울 천호동 반지하 4평짜리 단칸방에서 세들어 살던 40대 가장과 부인,7 · 8살 자녀 등 일가족 4명이 치솟는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해 동반 자살했다. "내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이후 두 달간 17명의 세입자들이 목숨을 끊었다. 88올림픽을 치른 국가의 수치스런 사건이었다.
1986년 말에서 1990년 초까지 전국 도시지역 집값은 47.3% 올랐고,전셋값은 82.2%나 올랐다. 당시 이승윤 경제팀이 경제침체를 우려,성장에만 치중해 부동산투기와 물가불안을 야기한 결과였다(대한민국 부동산 40년사 분석).
20여년 전 전셋값 폭등에 따른 서민들의 상흔(傷痕)이 최근 되돋아나는 양상이다. 전국 평균 전셋값이 2009년 4월 이후 93주 연속(1월17일 기준)상승했다. 전세수요 증가로 오름세도 가팔라졌다. 당국자들은 "20년 전 노태우 정부시절의 전셋값 폭등 때는 매매가격이 동반 급등했지만 지금은 집값이 안정기조여서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런 해석은 착각이다. 예전과 달리 전셋값이 급등해도 전세 수요자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사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집값이 뛰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 낙관론은 지금 집값이 소득 대비 비싸다는 비관론에 근거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7000만원짜리 전세를 살다가 3000만원을 빌리면 1억원짜리 집을 살 수 있었다. 지금은 1억5000만원 전세 세입자가 집을 사려면 2억원 이상을 대출받아야 한다. 장바구니 물가는 치솟고,자녀 학원비는 줄일 수 없는데 용빼는 재주로 집을 살 것인가. 2006년 집값 폭등기에는 불안을 느끼고 주택을 매입했던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도 내집마련에 나설 '간 큰' 세입자는 드물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세유민(流民)'의 발생이다. 오른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이다. 20여년 전 "엄마,우리 또 이사가?"라는 가슴아픈 말이 '자살 도미노'를 불렀던 상황을 당국은 되씹어봐야 한다. 우리나라 세입자는 전체 가구의 44%나 된다. 공공임대주택에 살며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가구는 고작 5% 미만이다. 선진국의 20~30%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빈곤층 및 탈(脫)중산층 서민이 전세난에 신음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엉뚱한 복지논쟁에 빠져 있다. 청년 백수에게 일자리가 진정한 복지라면,세입자에게 절실한 복지는 안정적인 주거다. 주택매매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전 · 월세는 의식주의 기본인 생존의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온갖 위원회와 특보,특임장관을 만들었다. 이 중에 가칭 '서민주거안정 대책위원회'나 '전 · 월세안정 특보'는 없다. 집값이나 전세대책은 여러 정부부처에 연관돼 있어 조정역할이 중요한데도 말이다. 이런 조직이 서울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는 재개발 · 재건축 철거시기만 조정해도 전세의 신규 수요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야당도 문제다. 무상급식과 같은 포퓰리즘 복지 아젠다에 치우쳐 있다. 전세난 해법으로 내놓은 전월세인상률 상한제만 해도 공공임대가 아닌 민간임대주택에 적용할 경우 위헌소지(사유재산권 침해)가 다분하다. 과거에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전세계약기간을 2년으로 늘렸지만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차별적 복지니,보편적 복지니 하는 복지논쟁은 우리나라 자가보유율(현재 56%)이 선진국처럼 60~70%에 오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
1986년 말에서 1990년 초까지 전국 도시지역 집값은 47.3% 올랐고,전셋값은 82.2%나 올랐다. 당시 이승윤 경제팀이 경제침체를 우려,성장에만 치중해 부동산투기와 물가불안을 야기한 결과였다(대한민국 부동산 40년사 분석).
20여년 전 전셋값 폭등에 따른 서민들의 상흔(傷痕)이 최근 되돋아나는 양상이다. 전국 평균 전셋값이 2009년 4월 이후 93주 연속(1월17일 기준)상승했다. 전세수요 증가로 오름세도 가팔라졌다. 당국자들은 "20년 전 노태우 정부시절의 전셋값 폭등 때는 매매가격이 동반 급등했지만 지금은 집값이 안정기조여서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런 해석은 착각이다. 예전과 달리 전셋값이 급등해도 전세 수요자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사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집값이 뛰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 낙관론은 지금 집값이 소득 대비 비싸다는 비관론에 근거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7000만원짜리 전세를 살다가 3000만원을 빌리면 1억원짜리 집을 살 수 있었다. 지금은 1억5000만원 전세 세입자가 집을 사려면 2억원 이상을 대출받아야 한다. 장바구니 물가는 치솟고,자녀 학원비는 줄일 수 없는데 용빼는 재주로 집을 살 것인가. 2006년 집값 폭등기에는 불안을 느끼고 주택을 매입했던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도 내집마련에 나설 '간 큰' 세입자는 드물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세유민(流民)'의 발생이다. 오른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이다. 20여년 전 "엄마,우리 또 이사가?"라는 가슴아픈 말이 '자살 도미노'를 불렀던 상황을 당국은 되씹어봐야 한다. 우리나라 세입자는 전체 가구의 44%나 된다. 공공임대주택에 살며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가구는 고작 5% 미만이다. 선진국의 20~30%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빈곤층 및 탈(脫)중산층 서민이 전세난에 신음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엉뚱한 복지논쟁에 빠져 있다. 청년 백수에게 일자리가 진정한 복지라면,세입자에게 절실한 복지는 안정적인 주거다. 주택매매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전 · 월세는 의식주의 기본인 생존의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온갖 위원회와 특보,특임장관을 만들었다. 이 중에 가칭 '서민주거안정 대책위원회'나 '전 · 월세안정 특보'는 없다. 집값이나 전세대책은 여러 정부부처에 연관돼 있어 조정역할이 중요한데도 말이다. 이런 조직이 서울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는 재개발 · 재건축 철거시기만 조정해도 전세의 신규 수요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야당도 문제다. 무상급식과 같은 포퓰리즘 복지 아젠다에 치우쳐 있다. 전세난 해법으로 내놓은 전월세인상률 상한제만 해도 공공임대가 아닌 민간임대주택에 적용할 경우 위헌소지(사유재산권 침해)가 다분하다. 과거에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전세계약기간을 2년으로 늘렸지만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차별적 복지니,보편적 복지니 하는 복지논쟁은 우리나라 자가보유율(현재 56%)이 선진국처럼 60~70%에 오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