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열풍이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주재원과 가족들을 대피시키는 등 비상조치에 나섰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은 30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아프리카지역본부를 임시 폐쇄했다. 주재원들은 중동지역본부가 있는 두바이로,가족은 전원 한국으로 귀국토록 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 소속 주재원 9명과 기아차 3명,모비스 1명은 이날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들의 가족 36명도 두바이와 바레인 등을 경유해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TV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LG전자 현지 법인은 주재원 가족 30명을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귀국을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지사도 주재원 가족을 공항 근처 호텔에 투숙시킨 뒤 내달 1일께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토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카이로의 한국 식당들도 치안 불안 탓에 영업을 중단했다. 시내에 있는 한 한국 식당은 시위대에 한때 점거되기도 했으나 다행히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인문대의 인문학 과정 교수와 수강생 50여명은 강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최근 이집트를 방문했다가 발이 묶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철 KOTRA 이집트 카이로KBC 센터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24개사 대부분이 초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며 "일부 업체들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주재원과 가족을 인근 국가나 한국으로 대피시키는 등의 비상조치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공식 집계된 것은 없지만,소요 사태가 이집트 주요 도시로 퍼지고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집트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현대차와 LG전자를 비롯해 삼성전자 GS건설 금호타이어 대우인터내셔널 등 총 24개사다. 기업들은 소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소비심리 위축과 상점 폐쇄 등으로 투자활동과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비재 관련 기업들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자체 마케팅 및 바이어 관리 전략 마련에 나섰다. 건설 · 플랜트 등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대기업들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아직 국내 수출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KOTRA가 현지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시위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약간의 매출 감소만 나타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의 대 이집트 연간 수출 규모는 20억달러 정도다. 소요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산 제품도 점차 영향을 받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장창민/박동휘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