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논란인 '무상의료'를 일본은 실제 하고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도쿄에선 초등학생까지 어린이는 진짜 '의료비 무료'다. 병원 진료비는 물론 처방전 약값도 공짜다. 가난한 집 아이든,부잣집 아이든 모든 어린이에게 의료받을 권리를 똑같이 보장한다는 차원에서다. 말 그대로 '보편적 복지'다.

도쿄에 사는 기자도 아이가 열만 나면 무조건 의원을 찾았다. 동네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먹여도 될 증상이더라도 의원에 갔다. 약국을 이용하면 1500엔(2만원) 정도 약값을 내야 하지만 의원에선 뭐든 공짜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일본의 동네 의원은 어딜 가도 환자들로 넘친다. 아이 처방전으로 받은 감기약을 부모가 먹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어린이 무상 의료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런 '공짜'는 줄기는커녕 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고교 학비 무상화,중학생 자녀까지 월 1만3000엔(17만5000원)의 자녀수당 지급이 그렇다. 고속도로 무료화도 대기 중이다. 이런 무상 시리즈는 두말할 것도 없이 포퓰리즘 선거 공약의 결과다. 현재 집권 중인 민주당이 2009년 중의원 선거 때 내건 공약들이다.

달콤한 공짜가 늘어난다는데 싫어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일본의 헤픈 무상 복지로 인해 피멍이 든 건 국가 재정이다. 일본은 늘어나는 복지예산을 증세가 아닌 빚으로 메워 왔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세금 인상을 뒤로 미루고 손쉽게 국채를 남발했다.

그 결과 일본의 나라 빚은 900조엔(1경2150조원)을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204%로 선진국 중 최악이다. 재정위기에 휩싸인 그리스(137%)와 아일랜드(113%)보다도 높다. 아직은 1500조엔에 달하는 개인금융자산이 있어 버티고 있지만,지금 같은 복지 확대 속도라면 재정 파탄은 시간 문제다. 내년부터는 1947~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가 65세가 되면서 연금을 타기 시작한다. 급기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시키며 재정 위기를 경고했다.

빚으로 복지를 메우는 데 한계에 봉착한 일본은 세금 인상을 추진 중이다. 간 나오토 총리는 올 국정목표 중 하나로 '세금과 사회보장(복지)의 일괄 개혁'을 내걸었다. 핵심은 복지를 위해 그동안 미뤘던 세금 인상을 단행하겠다는 얘기다. 빈부차에 관계없이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면 전 국민이 똑같이 내야 하는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를 5%에서 10%까지 인상할 작정이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 보편적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간 총리는 소비세 인상을 위해 재정 중시파인 자민당 출신의 요사노 가오루씨를 경제재정담당상으로 영입했다. 그는 자민당 시절 민주당의 포퓰리즘 공약을 맹비난했던 인물이다. 정권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소비세 인상에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그만큼 일본의 복지예산 확대와 재정난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따뜻한 복지는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세금 인상을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의 복지 논쟁은 소모적이다. 야당은 증세 없는 무상 복지를 주장하고, 여당은 세금 인상을 앞세워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양상이다. 그보다는 국민이 수용 가능한 세금 부담과 복지 혜택 증가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논쟁이 더 생산적이다. 뒤늦게나마 복지와 세금을 패키지로 뜯어고치겠다고 나선 일본은 교훈이 될 만하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