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춘제(春節 · 설날) 연휴가 시작됐다. 춘제는 중국 최대의 명절이다. 거리마다 빨간 등이 불을 밝히고,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정월 보름까지 끊이지 않는다.

중국의 춘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1년 내내 아끼더라도 명절은 제대로 보내자(寧省一年 不省一節)'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인들의 지갑이 열리는 시기다.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 연 28억명의 사람들이 선물을 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의 경제가 발달하면서 섣달 그믐날 먹는 녠예판(年夜飯) 한끼 식사값으로 40만위안(6600만원)을 지불하고,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까지 중국인들로 들썩이는 게 요즘의 춘제 풍경이다. 전 세계가 춘제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라스베이거스의 완후이(晩會)

홍콩 문회보에 따르면 중국에선 지난달 1000인 여행단이 만들어졌다. 춘제 기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를 즐기기 위한 여행단이다. 오는 4일부터 6일까지 도박과 쇼핑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1인당 평균 6000달러.그러나 트렁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담아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인들의 평소 베팅 습관을 볼 때 깜짝 놀랄 기록이 나올 수도 있다"고 라스베이거스 호텔 관계자는 말했다.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5일 몬테카를로 도박장에선 춘제 완후이(晩會 · 밤공연) 행사가,벨라지오호텔에선 중국 민속음악 축제가 열린다. 메이시백화점은 1000인 여행단을 위한 2시간짜리 특별 쇼핑행사를 개최한다. 베이징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화교가 많은 지역이 춘제 특수를 누렸지만 이젠 중국인들의 춘제 여행이 글로벌화되고 있다"며 "가격보다는 질과 재미를 따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38만8888위안짜리 식사

중국에서는 춘제 전날 밤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녠예판이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올해는 한끼에 38만8888위안(약 6600만원)짜리 녠예판까지 등장했다. 8명 기준으로 최고급 제비집,캐비아와 샥스핀,자연산 상황버섯 구이,곰발바닥 등이 주메뉴인데 미리 주문하면 맞춤형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10만~20만위안짜리 호텔 상품도 흔하다.

보석상점에도 사람이 붐빈다. 재신(財神)으로 통하는 관우상 등 금으로 만든 각종 조형물을 선물용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베이징 왕푸징의 한 보석상 직원은 "하루 1억위안 이상의 매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작년 춘제 연휴(7일간)에 소비재 판매액은 3400억위안(57조8000억원)에 달했다. 연중 주간 평균보다 30%가량 많았다. 춘제 마케팅도 치열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경품서비스를 비롯해 각종 이벤트 행사를 벌이면서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농민공 이직 막기 비상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춘제가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춘제 때 고향에 갔다가 복귀하지 않는 직원 비율이 20% 가까이 된다.

광둥성 둥관시에서 장난감 제조업을 하는 김병학씨(53)는 "직원들에게 꼭 복귀하겠노라고 몇 번씩 다짐을 받은 뒤 고향으로 보내지만 5명 중 1명은 안 돌아온다"며 "춘제 때면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춘제 기간에는 공장 가동이 안 돼 제품 공급이 중단된다. 최대 3주간 공장을 쉬는 경우도 있다. 차이나데일리는 "춘제에 대비해 지난해 12월부터 물건을 추가로 받아서 비축해놓은 바이어들이 많다"며 "자금도 2~3개월간 묶이기 때문에 해외 비즈니스맨 중에는 춘제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