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떡국 먹고 한가로이 글밭 산책…꾸벅꾸벅 졸아도 괜찮아요
모처럼 긴 설 연휴,차례를 지낸 후에는 따끈한 아랫목에 발을 묻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연휴를 몽땅 쓸 수 있다면 제법 두툼한 책도 너끈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묵직한 주제와 두꺼운 책이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나 산문집은 어떨까.

◆대가들의 지혜와 처세 배우는 평전

평전의 미덕은 동서고금의 위인과 대가,명망가들의 삶을 편린이 아니라 통째로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중국 샤먼(厦門)대 역사학과 장자오청 · 왕리건 교수가 쓴 《강희제 평전》(민음사)은 1661년 여덟 살에 즉위해 1722년까지 61년간 재위하며 청나라의 기틀을 다진 강희제의 유년시절부터 즉위 이후 정권 확보 과정 및 내치의 업적을 꼼꼼히 되살려냈다. 각 부족의 정치 · 군사적 위협을 명민한 지략으로 극복하며 강력한 통치권을 확보하고 민생과 내치를 다진 강희제로부터 대통합의 리더십과 민생 우선의 정치,능력 위주의 인재 선발,이방인을 존중하고 앞선 기술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개방적 태도 등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비스마르크 평전》(강미현 지음,에코리브르)은 '철혈정책'으로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 총리 비스마르크를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살펴본 책이다. 석 · 박사 학위 논문을 비롯해 20여년 동안 비스마르크 연구에 매달려온 저자는 독일 통일은 물론 경제발전의 주역이자 유럽 평화의 중재자였던 그의 삶과 업적,개인사까지 꼼꼼하게 복원했다.

《찰스 다윈 평전》(김영사,전 2권)은 재닛 브라운 하버드대 교수(과학사)가 다윈이 쓴 수많은 편지와 일기,저작물,논문과 연구서를 바탕으로 다윈과 진화론을 둘러싼 각종 논쟁 및 의문들을 낱낱이 파헤친 역작.유년시절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다윈이 5년간의 비글호 항해를 통해 뛰어난 박물학자로 거듭나는 과정,《종의 기원》 출간부터 진화를 둘러싼 논쟁과 말년까지의 삶 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원자폭탄을 개발하고도 그 위험성을 경고하며 냉전체제에 맞섰던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카이 버드 · 마틴 셔윈 지음,사이언스북스)를 통해서는 비핵화의 당위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또 《제인구달 평전》(데일 피터슨 지음,지호)에서는 야생 침팬지 연구의 대모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의 삶과 학문,사회활동 등을 통해 끝없는 생명 사랑과 고난에 굴하지 않는 열정,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울 수 있다.

◆재미있게 읽을 해외 소설

중국의 '선봉파(전위파) 기수' 작가 쑤퉁(蘇童)의 《화씨비가(華氏悲歌)》와 《성북지대》(비채)는 각각 중국 하층민과 불우한 청소년들을 사실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1970~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화씨비가》는 아내가 자살하자 복수를 위해 공장에 불을 지르고 감옥에서 자살한 화진더우가 세상에 남겨진 자신의 다섯 아이와 누이의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망령이 돼 떠돌며 지켜보는 이야기다. 소시민의 고단한 삶과 그 속에서도 솟아나는 생명의 에너지가 절묘하게 대비된다.

아이티 출신의 프랑스 작가 다니 라페리에르는 《슬픔이 춤춘다》(생각의나무)를 통해 33년 만의 귀향길에서 마주치는 빈곤과 굶주림,폭력 등 아이티의 현실과 함께 거기서 피어나는 예술가의 혼과 사람들의 희망을 전한다.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 프랑크 쉐칭의 《변종》(전 2권,김영사)은 거대 기업들의 이산화탄소 배출과 석유시추 기지 건설로 심해가 오염되면서 변이를 일으킨 해양 생물이 인간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은 환경 스릴러.인간을 향한 자연의 소리 없는 반란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실감나게 그렸다.

지방 병원 내과의사를 통해 생명의 가치를 되짚어보는 나쓰가와 소스케의 《신(神)의 카르테》(작품),인구 1000여명이 사는 체스터스밀이 한순간에 투명 돔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린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황금가지) 등도 권할 만하다.

◆가볍게 읽기 좋은 산문집

지난달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의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는 등단 40주년이자 팔순을 맞았던 작가가 자신의 어린시절과 노년의 삶,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따뜻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풀어놓은 책.전쟁 이후 서울에서 바라본 남대문과 2008년 불타버린 남대문,천안함 사태와 같은 이슈들도 다뤘다.

지난 연말 출간된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21세기북스)은 소설가 박완서 · 한승원 · 성석제,시인 신달자 · 김용택 · 정호승,이해인 수녀 등 문인과 각계 인사 25명이 쓴 에세이 40편을 묶은 책.김용택 · 박완서 · 안도현 · 이순원 · 이재무 등 작가 20명이 쓴 수필 한 편씩을 묶은 《반성》(더숲)도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꿈꿀 기회를 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