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서 야권과 개헌 문제를 포함한 정치개혁 대화에 나섰다. 100만명 규모의 시위와 총파업이 벌어지고 군부가 사실상 지지를 철회하자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성난 민심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만이 사태해결 방안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태는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게 전개되고 있다.

◆시위대, 일관되게 정권 퇴진 요구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집트 국영TV를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화 제안을 전달했다. 그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모든 정당들과 개헌 및 정치 개혁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자고 요청했다"며 "대화를 통해 개헌과 정치개혁 일정을 도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명한 새로운 정부는 실업과 인플레이션,부패 등 모든 불만에 맞서 싸울 것"이라며 민심수습에 나섰다.

앞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내각을 해산한 데 이어 31일에는 강경진압을 주도해온 하비브알 아들리 내무장관을 경질하고 재무장관을 교체하는 등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현 체제의 퇴진"이라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시위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에 따르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반정부시위대는 1일 수도 카이로에서 무바라크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100만명 행진'을 열면서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군과 경찰은 시위대가 모여 있는 카이로 중심부 알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시위대의 집결을 막기 위해 철도 운행도 전면 중단시켰다. 로이터통신은 "정부가 시위현장에 군과 경찰을 추가로 투입하고 내각 인사를 발표하는 등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시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 고립 심화

무바라크 대통령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는 상황이다. 이집트 사태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군부도 시위진압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사실상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이집트 군은 1일 성명을 통해 "군은 지금까지 이집트 국민들에게 무력을 사용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중립적 입장을 취했던 미국 등 우방도 강경 입장으로 돌아섰다. AP통신은 이날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미국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오는 9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은 시위대의 정권 퇴진 요구에 대해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우선 비상계엄을 해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서방세계도 무바라크 정권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1일 이집트 사태와 관련해 27개국 외교장관 명의의 성명을 채택,이집트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성명에는 과도정부를 먼저 출범시킨 뒤 민주 선거를 치르는 방식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겼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집트는 더 큰 권리와 자유,법치가 보장되는 민주체제로 질서있게 이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혼란지속… 자치경비대 구성까지

시위가 8일째로 들어서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사실상 이집트는 무정부 상태다. 알자지라 TV는 1일까지 사망자가 150명으로 늘었으며 부상자는 최소 4000여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오후 3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통행금지령도 내려졌지만 치안은 극도로 불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국영 TV는 "카이로를 비롯해 휴양도시에서까지 약탈과 방화가 벌어지자 시민들은 자치경비대까지 구성해 스스로 치안유지에 나섰다"고 전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