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비상령 해제키로..요르단, 새 내각 구성
예멘 대통령, 불출마 선언..이란, 이슬람 체제 요구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가 시민 봉기로 요동치자 위기의식을 느낀 아랍권 국가들이 민주적 조치의 이행 공약을 내걸거나 구 내각을 해산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는 등 민주화 쓰나미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자구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 1월 초 23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전격적인 망명을 몰고 온 튀니지 시민혁명의 불길은 같은 달 25일 인접한 북아프리카 국가이자 중동 지역 인구 대국인 이집트로 옮아붙었다.

알제리와 요르단, 예멘, 시리아 등 아랍권 국가들은 중동 지역의 맹주국 역할을 자임해온 이집트에서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가 열흘 넘게 이어지고 날이 갈수록 격화하자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입헌군주국인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지난 1일 정치개혁 추진과 실업대책 마련 등에 지지부진하다는 국민의 비난을 받아온 사미르 리파이 총리 내각을 전격 해산하고 장성 출신인 마루프 비키트 전 총리를 다시 총리로 기용, 새 내각을 구성토록 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압둘라 2세 국왕은 3일에는 이례적으로 이슬람 지도자들과 만나 정치와 경제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등 고물가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는 자국민의 불만 해소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북아프리카 국가 알제리에서는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19년 된 국가비상령을 해제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알제리 헌법의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2009년 4월 3선에 도전해 재집권에 성공한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지난 3일 국영 APS 통신을 통해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비상령을 해제하겠다"면서 이를 대신할 테러 대처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예멘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지난 2일 의회 연설을 통해 2013년에 임기가 종료되면 권좌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1978년 쿠데타로 집권한 살레 대통령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처럼 자국민의 퇴진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 원수는 튀니지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날 때만 해도 벤 알리 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두둔하더니 이집트로 시위가 퍼지자 말을 아끼며 은둔하고 있다.

바레인에서는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국왕이 지난 3일 식량 가격 급등에 따른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식량 보조금과 사회보장비의 증액을 정부에 지시하는 등 집안 단속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4일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집트에 이슬람 신정(神政) 체제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붕괴되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보유하는 신정 체제가 구축됐다.

미국 등 서방국과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한 뒤 이란에서처럼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집권하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내심 우려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고웅석 특파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