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오비맥주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이모 과장은 요즘 출근길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 못하다. 아침마다 지하철 출구 통로에 도배된 경쟁사 광고를 보면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장은 "오비맥주 본사로 통하는 강남역(서울 지하철 2호선) 2번 출구의 양 벽면에 하이트맥주 주력제품인 '맥스' 광고판이 10여개 이상 걸려 있다"며 "회사를 찾아오는 고객들 중에는 휴대전화로 위치를 재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하이트맥주 직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4개월 가까이 오비맥주의 '카스' 광고판을 보면서 출퇴근하고 있다. 서울 청담동 하이트맥주 본사 바로 옆 건물 옥상에 '카스' 옥외광고판이 큼지막하게 설치돼 있어서다.

국내 맥주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회사의 옥외광고 전쟁은 지난해 8월 시작됐다. 먼저 공세를 취한 쪽은 하이트맥주였다. 이 회사는 지하철을 타고 오비맥주 본사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강남역 2번 출구의 벽면과 천장에 광고판을 지난해 8월 달았다.

2개월 뒤 오비맥주도 반격에 나섰다. 하이트맥주 본사 바로 옆 건물을 타깃으로 잡았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자사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을 통해 하이트맥주 측에 '지하철 광고를 내려달라'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상대방 본사 코앞에 광고판을 내다 걸 정도로 양사 신경전이 심해진 것은 갈수록 좁혀지고 있는 시장 점유율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53.2%와 46.8%로 격차는 6.4%포인트에 불과하다. 5년 전인 2006년까지만 해도 하이트맥주가 22.4%포인트 차로 오비맥주를 앞섰으나 지난해 초 10.8%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두 회사의 점유율 경쟁이 심해지면서 남의 앞마당에까지 자사 깃발을 꽂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옥외광고 계약 기간은 보통 1~2년이어서 한동안은 경쟁사 광고를 계속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