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고 이집트 군 · 경은 시위 진압에 손을 놓는 등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대와 친무바라크 시위대 간 충돌로 총 11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5만명으로 추산되는 반정부 시위대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인한 전체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300여명,50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무바라크 지지자들의 외국 기자에 대한 테러는 이집트 기자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집트 관영신문 알아흐람의 기자가 자신의 집 난간에서 시위 사진을 찍던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열흘 넘긴 과격 시위,정부 못 막아

야권은 무바라크 퇴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시위대는 4일을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의 날(Departure Day)'로 선포하고 시위를 계속했다.

반정부 시위의 구심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엘바라데이는 이날 알자지라 TV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이집트 국민들이 요청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위 진압 포기 의사를 밝히는 등 행정부도 사실상 무바라크에게 등을 돌렸다. 아흐메드 샤피크 이집트 총리는 4일 성명을 통해 알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 강제해산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는 "폭력을 쓰지 않고 공공기물을 파손하지 않는 한 누구도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위 참가자들은 본인 의사에 따라 광장에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무바라크는 명예퇴진을 모색하는 듯 보인다. AP통신은 카이로 알 아흐람 정치전략연구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무바라크는 퇴진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 하고 있다"며 "무바라크가 부통령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명예롭게 퇴진하려는 듯 보인다"고 설명했다. 샤피크 총리는 그러나 이날 위성채널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명예롭게 물러나야겠지만 현 과도정부에 권력을 넘길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및 국제사회도 퇴진 압박

미국은 무바라크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무바라크의 퇴진을 재촉하면서도 "권력이양의 구체적 사항은 이집트인들이 결정하겠지만 반드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로 연결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도 이집트 야권 편들기에 나섰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4일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이집트 및 주변 지역 정세에 대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존중하는 속에서 대화와 정치적 개혁 및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표출돼야 한다"며 "이집트 내 모든 정파는 의미 있는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무바라크가 물러나게 되면 해외로 도피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가족은 이미 런던 등지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알자지라 TV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은 해외 도피처 제공에 미온적 입장이지만 이스라엘은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한편 프랑스 은행 크레디아그리콜은 이집트가 반정부 시위로 하루에 3억1000만달러의 손실을 보고,올해 경제성장률도 당초 예상치인 5.3%보다 낮은 3.7%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