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짜 남친과 좌충우돌…폭소연기 신선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방금 헤어진 테리.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골에 사는 부모님이 딸의 남자친구를 만나보고 싶다며 뉴욕으로 온다. 연극은 테리가 부모님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해 거짓말을 하면서 시작된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부모님 때문에 테리는 옆집 남자 찰리에게 가짜 남자친구 역할을 해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한 테리의 거짓말은 과연 그녀의 기대처럼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엉겁결에 테리의 남자친구가 된 찰리.하루만 그 역할을 맡기로 했지만 한 번 시작한 거짓말 때문에 일인다역을 동시에 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 빠진다. 그는 테리의 아빠 앞에서 테리의 남자친구가 됐다가,테리의 엄마 앞에선 테리의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르졸리의 남자친구가 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테리의 엄마는 '좋은 남편감의 표준을 찾았다'며 찰리에게 지극한 애정을 표현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찰리의 다중연기가 한계에 달할 즈음,헤어진 진짜 남자친구가 나타나면서 극은 새 국면을 맞이한다.

연극 '남자 따위가 왜 필요해'의 중심에는 사랑과 거짓말이 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 내뱉은 거짓말이 또다른 거짓말을 낳고,이중 삼중으로 꼬여가는 상황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등장인물들의 짝이 여러 번 바뀌고 때때로 성 정체성을 넘나드는 황당한 상황도 벌어지지만 그 가운데 각자는 진짜 자신의 짝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된다.

"남자들이 할 줄 아는 건 가만히 앉아 차려놓은 밥 떠먹는 일"이라던 테리의 엄마도 30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남자 따위가 왜 필요해'에서 '남자는 꼭 필요해'로 바뀌는 순간이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는 각자 내면의 오래된 딜레마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이 연극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동성애와 애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만 가정의 테두리까지 흔들지는 않는다. 대학로 장수 연극 '라이어'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거짓말 중심의 폭소극이라 더 반갑다.

웃음의 한복판에는 아역배우 출신 장덕수가 있다. 테리의 거짓말 작전에 휘말린 찰리 역을 능청스럽게 해냈다. 테리 역에 차현정,극중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동성애자인 마르졸리 역은 방은희가 맡았다.

대형 뮤지컬을 주로 선보인 현대극장이 젊은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이 연극은 미국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리치 슈바트의 세계 초연 작품.김진영 현대극장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제목만 보면 페미니즘 연극인가 싶지만 사실은 잘 빚은 로맨틱 코미디다.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02)762-6194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