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년 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제정하면서 우선적으로 염두에 뒀던 것 가운데 하나가 기업 인수 · 합병(M&A) 활성화다.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자본시장을 통한 M&A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국내 투자은행(IB)들은 이 분야에서 글로벌IB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M&A 재무자문 부문에서 대금지급이 완료된 딜 기준으로 10위권 내에 있는 한국 회사는 삼정KPMG와 삼일PwC 2곳에 불과했다. M&A 활성화를 위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부 규제가 완화됐던 사모투자전문회사(PEF)도 합격점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외국계에 안방 내준 M&A 자문시장

영국의 M&A정보업체 머저마켓(Merger Market)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M&A시장에선 총 288건의 딜이 성사됐다. 시장 규모는 42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에 시장 규모가 전년보다 5.2% 감소한 22조9900억원(174건)을 기록한 뒤 2009년 28조4900억원(212건)으로 회복된 데 이어 2년 연속 성장세다. 지난해 전 세계 M&A시장이 2조1249억달러(2337조원) 규모로 2007년 3조6522억달러(4017조원)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해 회복세가 매우 빠르다.

문제는 국내 IB들이 이처럼 달아오르고 있는 국내 M&A시장을 외국계에 완전히 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신문과 연합인포맥스가 지난달 '한국IB대상' 시상을 위해 공동 조사한 결과 대금지급이 완료된 M&A를 기준으로 한 재무자문 부문에서 10위권 내에 든 한국 회사는 삼정KPMG(3위)와 삼일PwC(10위)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BOA메릴린치(1위) 모건스탠리(2위) 골드만삭스(4위) 맥쿼리(5위) 등 굵직굵직한 외국계 IB들이 차지했다.

◆제 몫 못하는 PEF

IB와 함께 M&A시장 활성화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PEF도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도입 6년 만에 출자약정액이 44조원(누적 기준)을 돌파하는 등 '덩치'는 커지고 있지만 경영권을 샀다 되파는 바이아웃 딜 등 위험도가 높은 거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금융감독원 관계자는 "PEF에 자금을 대는 투자자(LP)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이익을 올리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PEF가 M&A와 같은 공격적 투자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스몰 딜을 겨냥한 약정액 1000억원 미만의 소형 PEF들이 쏟아지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형 PEF는 국민연금 정책금융공사 등 정책자금을 유치해 안정적으로 굴리는 데만 의존하다 보니 투자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기업이 아니면 인수에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정된 투자대상을 놓고 PEF끼리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처하는 셈이다.

송치승 원광대 경영학과 교수는 "M&A시장에서 한정된 매물을 놓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매도자 주도의 시장이 형성된다"며 "이렇게 되면 M&A 가격 협상이 객관적 근거에 의해 진행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M&A 경쟁력 강화하려면

전문가들은 국내 M&A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관련 법 · 제도 정비와 국내 IB에 대한 인식전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태영 대우증권 IB사업부장은 "증권회사가 IB로서 적극적인 M&A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자기자본투자(PI) 여력을 높여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150% 미만으로 돼 있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EF 규제 완화와 관련,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재산의 50% 이상을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투자하도록 하는 등 PEF에 대해 운용규제가 가해지고 있어 헤지펀드로의 진화는 물론 운용자의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곤란하다"며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 6일 기자단 공동인터뷰를 통해 한국 IB산업의 대형화와 PEF에 대한 전면적 규제 완화를 시사한 것도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 · 제도 정비와 동반돼야 할 것이 국내 IB에 대한 인식전환이다. 국내 IB업계 관계자들은 "기업과 공공기관 M&A 담당자들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두려워해 실제 경쟁력과 상관없이 M&A 자문을 글로벌 IB에 몰아준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박천수 KB투자증권 IB팀장은 "국내 IB에 대한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인식전환이 절실한 실정"이라며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퍼블릭 딜에 국내 IB를 적극 참여시켜 트랙 레코드(실적)를 쌓도록 배려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 영업용순자본비율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지표다.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BIS)과 유사한 개념이다. 부담하고 있는 위험의 규모가 보유 중인 증권사의 유동성에 비춰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으로 나눠 백분율로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