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손에 땀을 쥐며 스모를 볼 수 없다. "(산케이스포츠) "온천도 스모(相撲)도 못 믿겠다. 일본 전통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요미우리신문)

스모 선수들이 서로 짜고 경기를 했다는 소식에 온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최근 스모 선수들의 야구 도박 사건을 조사하던 일본 경찰들이 수상한 문자 메시지를 발견해 조사한 결과,일부 스모 경기의 승부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일본스모협회는 내달 초 열릴 '하루바쇼(春場所 · 봄 대회)'를 전격 취소했다. 또 사건에 연루된 선수를 제명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다. 하지만 스모협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등의 비난 여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스모 대회가 취소된 것은 지금까지 단 한번뿐이었다. 1833년 첫 대회가 열린 뒤 1946년 2차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도쿄 국기관을 보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스모계의 각종 파문에 관대하게 넘어갔던 일본인들이 이번 사건에 유독 분노하는 것은 스모를 바라보는 그들의 정신문화와 무관치 않다. 일본인들이 중시하는 신뢰와 명예가 스모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가미(神 · 신)로부터 신뢰를 얻은 리키시(力士 · 역사)들이 서로 싸우고 승패에 절대 복종하는 모습은 일본 특유의 '야마토'(大和 · 화합)정신으로 발전한다. NHK는 "일본인들은 태어나면서 스모와 가부키(歌舞伎),온천 등을 보고 즐기면서 진정한 일본인으로 성장한다"며 "스모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일본의 정신문화인 신(信)과 명예를 가르친다"고 했다. 그런 스모 경기가 조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의 공인 11대 전수자로 촉망받던 한 배우는 지난해 말 술집에서 다른 취객과의 시비 끝에 전치 2개월의 중상을 입었다. 군마현의 400년 전통 이카호 온천과 나가노현의 시라보네 온천 등 최고급 온천 수십 곳은 일반 수돗물을 끓여 온천으로 둔갑시키거나 첨가제를 넣다가 적발됐다.

일본인들이 자부해 온 '가치'의 붕괴는 '신뢰와 명예'를 바탕으로 고도 성장을 이끌었던 단카이 세대(1947~1949년에 출생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점과 맞물려 벌어지고 있다. 일본인들의 충격이 증폭되는 배경이다.

장성호 국제부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