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서 사태 해결의 구심점으로 부상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주 넘게 지속돼온 반정부 시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 모습이다. 이집트 국영 알아라비야TV는 술레이만 부통령이 6일(현지시간)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야권 대표자들과의 협상에서 3월 첫째주까지 개헌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정부는 다양한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오는 9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도록 하고 비상사태법(비상계엄령 발동)도 폐지키로 했다. 또 국민적 분노를 달래기 위해 공공부문의 임금과 연금을15% 인상키로 했다.

◆미국은 술레이만 옹호

무바라크의 후임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술레이만 부통령이 차기로 부상하고 있지만 본인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술레이만은 미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권력 승계 가능성에 대해 "이집트 헌법이 용인하지 않고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AFP통신도 "무바라크의 권한을 인수해달라는 야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은 서방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술레이만을 통한 점진적인 민주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AFP통신은 무바라크 정권에 이은 급진세력의 부상을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군 출신인 술레이만은 무바라크의 최측근으로 정보기관 책임자를 지냈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집트에서 이슬람 급진세력이 전면 등장하는 것을 꺼리는 속내를 드러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술레이만 부통령이 이끄는 이집트 정부가 밝힌 이행 과정을 지지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이집트 야권은 "술레이만 한통속"

반면 야권 일각에서는 그가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동반 퇴진 압력도 받고 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비롯한 일부 야권은 여전히 '선 무바라크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정부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은 6일 열린 정부-시위대 간 회동에 초청받지 못했다. 엘바라데이는 이날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누가 누구와 대화하는지 아무도 모르고,모든 절차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술레이만이 이번 반정부시위의 중심 세력이었던 무슬림형제단을 비판한 사실도 드러났다. 폭로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2006년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 따르면 술레이만은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무슬림형제단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들을 선동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또 무슬림형제단에서 11개의 급진단체가 파생됐다며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공직부패 · 선거부정 조사 약속

이집트 정부는 이날 공직부패와 선거부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는 등 개혁 조치를 추가로 내놓았다. 반정부 시위대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국회와 고등법원에 지난해 11월 치러진 총선과 관련한 부정선거 사건들을 재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이집트 관영 뉴스통신인 메나(MENA)가 전했다. 검찰은 또 8일부터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각료 3명과 집권 국민민주당(NDP) 고위 관료 1명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한편 임금과 연금을 인상하기 위해 사미르 라드완 신임 재무장관은 "65억이집트파운드(9억600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할 것"이라며 임금인상은 공공부문 600만명을 대상으로 4월부터 실시될 것 이라고 밝혔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