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그린 스마트 시대
"인구 늘지만 식품·연료는 감소"…농업·바이오로 주력사업 변경
"R&D는 배신하지 않는다"
내핍 경영때도 기술개발비 '팍팍'…매출 30%가 신제품서 창출
◆미래 위해 회사 본업까지 바꾸다
듀폰은 저력 있는 회사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1955년부터 매년 발표해온 세계 500대 기업 명단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나일론 스타킹과 칫솔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 판 회사로도 유명하다.
섬유사업은 듀폰이 60년 동안 매달려 온 주력 분야였다. 그러나 듀폰은 그룹의 상징이었던 섬유 부문을 2004년 미련 없이 팔아치웠다. 그리고 77억달러에 종자회사 파이오니아를 인수, 가뭄과 병충해에 잘 견디는 옥수수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도박에 가까웠던 이 결정은 쿨먼 CEO 체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듀폰은 몇 년 전부터 농업과 바이오연료 등 대체에너지 사업 중심으로 전체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왔다. 이제 농업 비중은 전체 사업부문의 30% 이상으로 가장 크다. 쿨먼 CEO는 "잘 나가는 사업도 주기적으로 점검해 새로운 성장 사업군을 찾아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시장의 흐름과 수요"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최종 목표는 그린 스마트 기업이다. 밑바탕에는 면밀하고 과학적인 시장 예측이 깔려 있다. 세계 인구가 매일 15만명씩 늘어 2050년에는 90억명이 돼 각종 농산물 수요가 늘고,화석연료 의존도가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듀폰은 인구증가 및 화석연료 대체와 함께 인간 · 환경 보호,신흥시장 성장을 4대 메가트렌드로 제시했다.
쿨먼 CEO는 "태양광 소재를 끊임없이 개발해 대체에너지 발전단가와 화석연료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시점을 앞당기겠다"고 공언했다. 듀폰은 얼마 전 2차전지 소재 개발에 이어 바이오연료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지난해엔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돼 수명을 50% 연장할 수 있는 고성능 분리막 '너게인'을 출시했다.
지난달엔 웰빙 껌의 대명사 '자일리톨'로 유명한 덴마크 식품 원료제조업체인 다니스코를 63억달러(7조원)에 인수했다. 다니스코는 전 세계 자일리톨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이를 통해 농업 및 식품 부문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R&D 투자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금융위기 여파로 듀폰의 2009년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50% 이상 급감했다. 쿨먼 CEO는 그해 취임 즉시 '내핍 경영'에 돌입했다. 정직원 계약직 가릴 것 없이 본사 임직원 20%가량을 해고했다. '피바람'은 계속됐다. 제품과 비용을 통제하는 게 급선무였다. 고정비용 12억달러를 줄였으며 쿨먼 CEO는 자진해서 연말 성과급 중 20만달러를 반납했다. 임직원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2~3주씩 무급 휴가를 갔다.
모든 걸 다 줄였지만 R&D만은 손대지 않았다. 당시 대다수 기업들이 R&D투자를 30%까지 줄였지만 듀폰은 기존 14억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전략 덕분에 2009년 한 해에만 2086건의 미국 특허를 출원했으며,1400개가 넘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듀폰 역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브라질과 중국 등에 연구소 10곳을 새로 열거나 확장했다.
듀폰의 승부수는 주효했다. 금융위기 당시 폭락했던 주가는 수직상승했다. 지난해 주가상승률(48%)은 다우지수 30종목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듀폰이 R&D분야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기존 개발제품인 케블라(방탄 섬유)를 의류 외에 자동차 타이어와 교량 강화재,방탄 차량용으로도 출시했다. 쿨먼 CEO는 "최근 5년 동안 매출의 30%가 신제품에서 나왔다"며 "R&D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우리의 모든 역량을 R&D에 집중하다 보니 얻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회사가 안정세를 되찾아 가자 퇴직했던 임직원들을 재고용하기 시작했다.
◆치밀한 경영자 수업 받은 여장부 CEO
2009년 1월 취임한 쿨먼은 200년이 넘는 듀폰 역사상 첫 여성 CEO다. 쿨먼이 듀폰에 합류한 지 21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회사가 오랫동안 치밀하게 경영자 수업을 시켰던 덕분이다. 찰스 할러데이 전 듀폰 회장은 차기 회장 발굴과 훈련에 정성을 쏟았다. 그는 한때 쿨먼과 함께 CEO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톰 코널리 현 듀폰 부회장과 쿨먼에게 10여년간 멘토(스승) 역할을 하며 리더의 자질을 키워줬다.
쿨먼은 수장이 되기 2년 전부터 CEO실에서 본격적인 경영자 수업을 받았다. 그는 부사장 재직 중 안전 · 방위산업 부문의 외형을 2002년 35억달러에서 2006년 55억달러로 키우는 등 능력을 입증했다. 할러데이는 쿨먼에 대해 "수익과 매출을 증대시켰으며 자질을 갖춘 차세대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