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유석씨(33)는 연초에 적금을 깼다. 내년 여름휴가를 세계 최고의 대중음악 축제로 꼽히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보내기 위해 든 적금이었다. 하지만 이글스,스팅,아이언 메이든 등 세계적인 록 스타들의 내한 공연을 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그는 "예전에는 국내에서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젠 굳이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관련 콘서트가 쏟아지고 있다"며 "얇은 지갑이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해외 뮤지션들의 국내 공연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전설적인 록밴드 이글스,팝의 요정 테일러 스위프트,싱어송라이터 코린 베일리 래,일렉트로닉 록그룹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 등 내한을 앞둔 아티스트의 장르도 다양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해외 뮤지션들의 서울 공연은 2004년 10건에서 지난해 53건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등을 빼고도 이렇다. 올해에는 내달까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공연만 17건에 달한다.

국내 가수들의 공연 시장도 함께 팽창했다. 국내 대중음악 콘서트 매출액은 2007년 308억5600만원에서 2009년 436억9500만원으로 급증했다. 연평균 증가율이 20%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의 뮤지컬(5.4%),클래식(11.0%) 등에 비해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해외 스타 뮤지션 줄줄이 한국 찾는 까닭은…
◆스타들,음반보다 공연으로 승부

해외 아티스트의 국내 공연이 급증하는 것은 세계 음악 시장이 공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음반산업연맹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디지털 음원 판매 성장률은 6.0%로,전년도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대형 음반사들이 2004년부터 음원 온라인 판매로 수익을 얻기 시작한 이후 성장률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기는 처음이다.

음원 수입이 줄어들면서 뮤지션들의 세계 순회 공연 횟수가 늘어났고 한국을 찾는 뮤지션들이 많아졌다. 지난해 그린데이,펫샵보이즈 등이 첫 내한공연을 가졌고 올해에는 이글스가 처음 내한한다. 마돈나,라디오헤드 등의 내한공연설도 나오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장인걸 대중예술지원팀 대리는 "음반산업이 위축되고 디지털 음원 시장의 성장세도 둔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공연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국내 가수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국내 관람 수요도 폭발

국내 팝 애호가들의 공연 수요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스티비 원더 내한공연 표는 20분 만에 매진됐고 암표 가격이 9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린데이,스팅 등의 콘서트도 매진 행렬을 이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의 지난해 3일간 누적 관객 수는 7만9000여명으로 2009년보다 30% 이상 늘었다.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작년 누적 관객도 5만명이 넘었다.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등도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공연장에서 직접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며 "특히 록페스티벌은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계층인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의 취향과도 딱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공연 노하우도 탄탄해졌다. 국내 공연 시장에 대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신뢰도가 높아졌고,국내 공연기획사가 해외 유명 음악축제 측과 프로그램을 함께 짜기도 한다. 세계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한몫 했다.

한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스타를 내세운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삼성 등 다른 대기업들도 글로벌 스타를 통한 문화 마케팅에 관심을 쏟고 있다"며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은 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