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숨이 꼴깍거리던 씨티그룹에 2008년 8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공적자금 450억달러를 긴급 투입했다. 이 중 200억달러는 1년 만에 회수했다. 나머지 250억달러는 보통주로 전환해 27%의 지분을 갖게 됐다. 미 정부는 그 지분을 작년 12월 전부 팔았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2년,보통주로 바꾼 지 1년 5개월만이다. 씨티그룹의 경영정상화로 주식 가격이 계속 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신속한 공적자금 회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가 외환위기로 부실화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한 뒤 우리금융지주로 편입시킨 것은 2001년 3월의 일이다. 쏟아부은 공적자금만 12조8000억원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우리금융은 여전히 정부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7년에는 우리금융 주가가 2만7000원까지 올랐다.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는 호기였다. 노무현 정부는 그 좋은 때마저 그냥 보냈다.

지난해 다시 우리금융의 민영화 작업에 시동이 걸렸다. 우리금융 직원들의 민영화 열망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쟁입찰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예비입찰을 무산시켰다. 작년 12월의 일이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이렇게 질척거리고 있다.

어찌보면 은행 민영화 작업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산업은행 민영화를 금융개혁의 상징으로 내걸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뒷전으로 미뤘다.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산은 민영화는 투자은행(IB) 업무에서 국책은행인 산은과 민간 증권사가 경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 출발했다. 국책은행이 밥그릇을 뺏어가는 데 대한 다른 금융회사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 큰 게 아니었다. 그게 정말 문제였다면 다른 방법으로 풀었어야 했다. 산은의 IB업무와 계열사로 두고 있던 대우증권을 묶어 팔면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다.

쉬운 길을 돌아가다 보니 걸림돌이 많았다. 산은 민영화 후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을 지원하는 기능을 해야 할 기관이 필요했다. 정책금융공사라는 곳을 세운 이유다. 산은지주의 최대주주로 설립됐고 성격도 모호하다.
최근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국책 금융회사의 기능재편을 들고 나온 것이다. 기능재편 대상에는 산은,정책금융공사,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가 포함됐다. 원자력발전소 수주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대형 국책 금융회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기능재편이 단순한 역할 재조정으로 끝날지 아니면 합병으로 확대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산은 민영화 계획에 불투명한 요인이 추가된 것만은 분명하다.

조만간 산은 민영화 계획 수정 논란이 일지도 모른다. 국책 금융회사의 기능 재편과 맞물리면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국자들에겐 적지 않은 고통이 될 것이다. 산은 민영화는 이 정부가 내세운 '야심작'이기 때문이다. 이를 번복할 자신이 없다면 산은 민영화 지속 여부나 국책 금융회사의 기능 재편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대신 우리금융 민영화를 조속히 성공시키는 게 확실한 업적을 쌓는 길이다. 씨티그룹이 좋은 사례다. 김석동 위원장은 오래 끌지 않겠다고 말했다.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고광철 논설위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