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경제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저금리,저물가,저통화가치' 등 이른바 '3저(低)' 현상이 한몫했다. 하지만 최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증가하면서 물가뿐만 아니라 금리와 원화가치도 동반 상승하는 '3고(高)' 위험이 커지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8일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던 저물가와 저금리,원화 약세 기조가 최근 들어 방향을 틀고 있다"며 "경제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간 2.9%(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안정세를 보였던 물가는 올 1월 4.1%를 기록,한국은행 중기 물가관리 목표치(3±1%)의 상단을 넘어섰다. 식품물가 불안에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치솟은 데 따른 공산품 가격 급등 영향이 컸다.

인플레 압력이 커지면서 추가 금리 인상을 점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한은은 2008년 말 금융위기 전 연 5.25%이던 기준금리를 2009년 2월 연 2%까지 떨어뜨렸으나 작년 7월 0.25%포인트 올린 이후 11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더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에도 두세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국고채 금리(3년물 유통수익률 기준)도 작년 3월 이후 처음 연 4%대에 진입했다.

원 · 달러 환율도 최근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달러당 1100원 선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플레이션 압력은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외부 요인이 크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 입장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당분간 원화 강세를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 재무부가 이례적으로 한국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도 원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3고 현상이 지속될 경우 수출 생산 투자 소비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권순우 실장은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물가를 잡을 묘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환율에도 인위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어 거시정책을 펴 나가기가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며 "정책의 딜레마에 빠질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금리 인상이나 가격 통제는 내수 경기,특히 가계 소비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그동안 정책 당국이 고집해온 낮은 통화가치 유지(고환율) 정책을 포기하는 게 물가를 잡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고유선 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권 실장은 그러나 "저금리와 저물가를 위해 환율을 포기하는 '모 아니면 도'식의 정책을 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상황에 따라 여러 정책 수단을 적절히 조합하는 유연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