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초 시무식에서 "판매대수가 많아질수록 품질이 중요하다"며 "더 많이 연구하라"고 임직원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정 회장은 "선택은 고객에게 달렸다.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며 "고객 입장에서는 차 값이 비싼 만큼 그 대가가 나오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현대차 경영을 맡은 1999년 이후 정 회장 경영철학의 핵심으로 불리는 품질 최우선 경영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정 회장은 취임 직후 "2010년까지 세계 5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내놨고 10년간의 품질경영 외길을 통해 그 약속을 지켰다. 현대차의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는 기아차를 포함해 575만대로 도요타(855만대)와 GM(840만대),폭스바겐그룹(714만대)에 이어 4위다. 현대 · 기아차가 계열 분리한 2000년 11위에서 무려 7계단이나 상승했다. 빅3 메이커 진입을 본격 모색하는 현대차그룹의 올해 판매목표는 현대차 391만대,기아차 242만대 등 633만대다.

◆미래를 향하는 MK 리더십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년을 시작한 정 회장의 시야는 지금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3 메이커 진입과 브랜드 고급화에 맞춰져 있다.

정 회장이 올 신년사에서 "이제 글로벌 메이커로서의 생산 · 판매체제를 갖췄지만 미래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자보다 더 노력하고,앞서 도전하고,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기업은 어제의 승자에서 오늘의 패자로 전락할 수 있다"며 임직원들에게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정 회장은 "품질경영을 더욱 강화해 고객의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고 친환경차 분야의 기술개발 및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원천기술과 경쟁우위를 확보해 나갈 것"도 주문했다. 글로벌 최고 자동차회사로 달려가기 위한 기본 체력을 착실히 다져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대차가 올 들어 브랜드 슬로건을 'New Thinking,New Possibilities(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로 바꾼 것도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서다. 최고급 대형 세단인 에쿠스를 작년 말 미국 시장에 본격 내놓으며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나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앞서 출시된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가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에쿠스까지 자리를 잡으면 고급 브랜드 위치를 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신형 쏘나타는 이미 고급스런 중형차 이미지를 바탕으로 미 시장의 베스트셀링카로 우뚝선 상태다. 이태왕 일본 아이치대 교수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과감한 의사결정과 경쟁력 있는 제품 라인업 전략을 고려할 때 현대차는 2020년 세계 자동차업계를 리드하는 업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장나지 않는 차를 만들라"

정 회장의 품질경영을 향한 뚝심과 집념은 지금의 현대차 성공 가도를 일군 원동력이다. 그리고 최고를 향해 나아가는 정 회장의 끝없는 도전으로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1990년대 중 · 후반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이미지는 말그대로 최악이었다. 엑셀과 쏘나타 등으로 미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고장이 잦다보니 소비자들은 불만을 쏟아냈고 주요 TV 토크쇼에서 현대차는 조롱의 단골 메뉴가 됐다. 1999년 미국을 찾은 정 회장은 현장에서 이런 실상을 가감없이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품질경영의 외길은 그렇게 시작됐다.

엔진과 변속기 등에 대한 '10년/10만마일 보증' 결단도 이때 나왔다. 회사 안팎에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무모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 회장은 "고장나지 않는 차를 만들면 된다"며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10년/10만마일 보증은 이후 품질 개선과 맞물려 현대차가 미 시장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최고 품질을 향한 정 회장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는 숱하게 많다. 지난해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던 최고급 대형차 에쿠스는 정 회장이 품질을 원점에서 재점검토록 지시해 수출 일정이 늦춰지기도 했다. 그는 2002년에도 수출용 차량의 엔진 소음을 찾아낸 뒤 40여일간 선적을 중단시키고 저소음 엔진으로 교체토록 지시할 만큼 품질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았다.

정 회장의 품질에 대한 집념 덕에 현대차는 미 품질조사기관 JD파워가 실시하는 신차품질 조사에서 톱 클래스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조사에서도 도요타와 폭스바겐 등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아커 UC버클리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에서 가진 강연에서 "정 회장이 경영을 맡은 후 현대차가 고품질 메이커로 자리잡는 등 완전히 바뀌었다"며 "정 회장이 품질부서를 직접 관리하고 품질회의를 주관하는 등 체질 개선에 주력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부지런하면 어려울 일이 없다"

지난해 6월 정 회장은 현대차 울산공장을 전격 방문했다. 당시 전 세계를 휩쓴 도요타 리콜 사태를 보면서 현대차 품질경영의 시발점인 울산공장의 생산 상황을 직접 챙기기 위해서였다. 정 회장은 미 수출을 앞둔 5공장 에쿠스 생산라인 등을 꼼꼼히 살폈고 수출선적부두까지 둘러봤다.

현장 중시 경영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지금의 현대차를 일군 정 회장의 또 다른 철학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국내외 생산라인을 찾아 사소한 것에서 부터 원칙과 기본이 지켜지는지를 챙긴다. 생산라인 청결과 정리정돈 등 기본이 지켜져야 좋은 품질이 나온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 공장을 찾아 엔진 조립과정을 지켜보던 정 회장은 기름이 잔뜩 묻은 부품이 그대로 완성차에 조립되는 것을 보고 즉각 시정을 지시했다. "기름 범벅이 된 부품을 조립하니 불량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품가치가 나오게끔 하려면 (주변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불호령이었다. 정 회장은 "별것 아니라고 여길 게 아니라 신속하게 자기 일처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기술개발의 본산인 남양연구소도 자주 찾는다. 신기술의 집합체인 하이브리드카와 개발 중인 신차들을 직접 운전하면서 품질 문제를 점검한다. 어지간한 엔니지어 못지않은 전문지식을 갖춰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는 게 연구원들의 일치된 전언이다.

정 회장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로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는 뜻이다. 새벽 3~4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신문과 방송뉴스를 보며 글로벌 이슈와 정치 · 경제 흐름 변화를 챙긴 뒤 오전 6시30분께면 서울 양재동 본사로 출근한다. 주말과 휴일에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법이 없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